Press release

2018. 10. 22. (월)부터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백질이 물에서 안정한 이유, 적외선으로 밝혔다

UNIST 김영삼 교수팀, 물과 대상 분자의 상호작용 실시간 관측 성공
서로 다른 상호작용 간 교환 현상 분석… ‘JPC Letters’ 표지 논문

“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물 분자들은 끊임없이 춤추면서 모습을 바꾸고 있거든요. 여기에 다른 물질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는 컴퓨터 계산으로만 짐작했던 모습을 실험적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UNIST(총장 정무영) 자연과학부의 김영삼 교수팀이 분자와 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매우 빠른 움직임을 실험적으로 관측하고, 이 움직임 덕분에 단백질 같은 분자들이 수용액에서도 안정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분이 많은 우리 몸에서 단백질이 안정한 구조로 존재하는 증거를 잡아낸 최초의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물리화학 분야 국제 저명 학술지 ‘저널 오브 피지컬 케미스트리 레터(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 JPC Letters)’ 표지 논문으로도 선정됐다.

The Journal of Pysical Chemistry Letters 표지로 선정된 김영삼 교수의 연구

물(H₂O)은 수소(H)와 산소(O)가 결합해 이뤄진 물질이다. 기본적으로 두 원자는 전자를 공유하는 ‘공유결합’으로 뭉쳐지지만, 약한 양성(+)을 띠는 수소가 다른 물 분자의 산소(-)에 달라붙는 ‘수소결합’도 나타난다. 수소결합은 공유결합보다 에너지는 약하지만,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물의 특성을 결정한다.

물속에 다른 물질이 들어오면 수소결합 때문에 구조나 성질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단백질이나 핵산 같은 생체분자들은 물속에서도 구조적으로 안정하게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비공유 상호작용이라고 추정해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엔-파이스타 상호작용(n→π*)’이다.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도 수소결합처럼 전자를 공유하지 않으면서 원자들을 결합시킨다. 결정 상태의 단백질 구조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이 현상이 물속에서도 나타나는지 입증한 실험은 없었다.

김영삼 교수는 “수소결합의 에너지가 엔-파이스타 상호작용보다 강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엔-파이스타 상호작용이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관측 전에는 알 수 없었다”며 “이차원 적외선 분광법(Two-Dimensional InfraRed Spectroscopy, 2D IR)’을 활용한 이번 연구로 물속에서도 엔-파이스타 상호작용이 존재하며, 수소결합과 경쟁하면서 분자를 안정화시킨다는 걸 최초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엔-파이스타 상호작용이 나타나는 ‘페닐 포메이트(Phenyl Formate, PF) 분자’를 물과 다른 용매에 녹이면서 2D IR로 관찰했다. 물 함량을 조절하면서 수소결합 변화도 함께 살폈다. 그 결과 PF 분자에서 엔-파이스타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 시스(Cis) 구조*수소결합 구조가 피코 초** 단위로 계속 교환됐다. 물이 많아질수록 수소결합 구조의 비율이 늘어났고, 두 구조가 서로 바뀌는 속도도 빨라졌다.

*시스(cis)와 트랜스(trans): 두 용어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시스’는 “같은 면”이라는 뜻이고 ‘트랜스’는 “다른 면”이라는 뜻이다. 치환기가 같은 방향을 향하면 그 부분을 ‘시스’라고 부르고, 치환기가 다른 방향을 향하면 그 부분은 ‘트랜스’라고 부른다.

**피코 초(pico second, ps): 1ps는 1조분의 1초

김 교수는 “물을 매개로 하는 두 구조 사이의 매우 빠른 교환이 단백질을 비롯한 생체분자의 구조를 더 안정하게 만든다”며 “물과 대상 분자의 수소결합이 끊어졌다 연결되기를 반복하면서 무질서도가 증가하고, 약한 에너지를 가진 엔-파이스타 상호작용도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2D IR은 수십 펨토 초* 시간 폭을 가지는 적외선 3개를 피코 초 단위의 시간차를 두고 분자에 쏘이면서 분자 구조와 매우 빠른 움직임을 관측하는 기술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은 에너지가 낮기 때문에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처럼 화학적‧생물학적 반응은 잘 일으키지 않는다. 이 덕분에 2D IR은 생체분자의 실제 작용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술로 손꼽힌다.

*펨토 초(femto second, fs): 1fs는 1000조분의 1초

김영삼 교수의 연구실 책장에는 지도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오른쪽 아래)이 놓여있다

김영삼 교수는 2D IR의 개척자인 故 로빈 M. 호크스트래서(Robin M. Hochstrasser) 교수*의 제자다. 2D IR 분야에서는 호크스트래서 교수의 첫 번째 제자로 꼽히며 20년 가까이 이 기술의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김 교수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다른 빛들은 화학적‧생물학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생체분자나 수용액 속 분자가 실제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며 “관측 도구의 영향으로 ‘죽어버린 분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분자’를 보는 기술이 2D IR”이라고 이 기술의 장점을 강조했다. (끝)

* 故 로빈 M. 호크스트래서(Robin M. Hochstrasser):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아흐메드 H.즈웨일(Ahmed H.Wewail)의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1998년 2D IR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해 용액 속 분자 움직임 관측의 길을 열었다.

  • 논문명: Interconverting Hydrogen-Bonding and Weak n→π* Interactions in Aqueous Solution: A Direct Spectroscopic Evidence
자료문의

홍보팀: 김학찬 팀장, 박태진 담당 (052)217-1232

자연과학부: 김영삼 교수 (052)217-2530

  • The Journal of Pysical Chemistry Letters 표지로 선정된 김영삼 교수의 연구
  • 김영삼 교수가 이차원 적외선 분광법에 필요한 실험장치를 살피고 있다
  • 2D IR 기술에 필요한 장비의 내부_적외선을 반사하기 위해 금(gold)으로 얇게 코팅한 거울이 쓰인다
  • 교수님 프로필
 

[붙임] 연구결과 개요

1. 연구배경

자연에 존재하는 화학 결합 중에는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결합하는 ‘비공유 상호작용’이 있다. 이런 작용이 균형을 이루면서 생겼다가 없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분자의 구조나 안정성, 용액 내 기능을 매우 정교하게 조정한다. 화학과 화학생물학 전 분야에 널리 퍼져있는 ‘수소결합’이 대표적인 비공유 상호작용 중 하나다. 참고로 수소결합은 질소(N)나 산소(O), 불소(F)처럼 전기적으로 음성을 띠는 원자와 결합한 수소 원자가 특정 조건에 있는 다른 원자를 끌어당기면서 생기는 결합을 의미한다.

자연계에는 수소결합보다 더 약한 형태의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도 존재한다. 이런 약한 상호작용은 생명체를 이루는 단백질이나 핵산처럼 중요한 분자뿐 아니라 초분자(고분자)에까지 널리 분포돼 있다. 이 상호작용은 단백질이나 핵산, 초분자 등의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약한 비공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면서 관련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뤄진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 연구는 수용액 상태가 아닌 결정 구조를 대상으로 수행됐거나, 이론적으로 접근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대상 분자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만 얻어왔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차원 적외선 분광법을 이용해 수용액에서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의 실체를 분자 수준에서 알아내고자 했다.

수소결합과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은 전자의 비국지성 분포로 이뤄지는 비공유 상호작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은 수소 결합에 비해 결합 에너지가 작다. 따라서 수용액처럼 수소결합이 형성되는 환경에서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도 존재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이 수소결합과 함께 존재한다면, 두 작용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이 두 가지를 밝히고자 추진됐다.

2. 연구내용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은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생체분자의 구조 안정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 작용에 대한 연구는 결정 구조나 기체상 분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됐거나 이론적으로만 이뤄졌다. 이런 한계로 인해 실제 수용액 상태의 분자에 대해서도 이러한 상호작용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원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본 연구진은 결정 구조나 기체상 연구에서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 작용이 존재한다고 알려진 ‘페닐 포메이트(Phenyl Formate, PF) 분자’를 수용액 상태에서 연구했다. 페닐 포메이트를 ‘물과 테트라하이드로퓨란(TetraHydroFurn, THF) 혼합 용매’에 녹여 일차원 및 이차원 ‘적외선 스펙트럼’을 얻고 이를 분석한 것이다. 이때 용매는 순수한 물부터 순수한 THF에 이르기까지 조성비를 다양하게 변화시켜서 만들었다.

PF 분자는 카르보닐기(Carbonyl Group)*와 페닐 고리(Phenyl Group)**를 함께 가진다. 카르보닐기와 페닐 고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시스(Cis) 구조’에서는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이 존재할 수 있다. 기체상 연구에서는 시스 구조에도 카르보닐기와 페닐 고리가 등을 돌리고 있는 ‘트랜스(Trans) 구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그 실체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카르보닐기(carbonyl group): 유기화학의 작용기 중 하나로 −C(=O)− 로 표시되는 2가의 작용기다. 카르보닐은 일반적인 유기 분자에서 매우 흔한 작용기로서, 다른 작용기의 일부로 발견되기도 한다.

*페닐 고리(또는 페닐기, phenyl group):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작용기로 -C₆H₅ 의 화학식을 지닌다. 6개의 탄소 원자는 순환 고리 구조를 이루며 배열돼 있다.

이차원 적외선 분광학 실험 결과, ① 용매에 물이 전혀 없을 때에는 기체상 연구에서 추정한 것처럼 시스 구조와 트랜스 구조, 두 가지만 함께 존재했다. 용매에 물이 존재하면 두 구조와 더불어 물과 수소결합을 이루는 구조가 존재하는 게 확인됐다.(그림2) 수소결합 구조와 시스 구조는 물을 매개로 해 피코 초(pico second, 1ps1조 분의 1) 단위에서 계속 구조를 바꿨다.(그림3)

물의 함량이 늘어날수록 수소결합 구조의 비율이 늘어났으며, 시스 구조와 수소결합 구조가 교환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결합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용매가 순수한 물이면 대부분의 분자가 수소결합을 이뤄야 하고,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을 하는 시스 구조는 거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순수한 물에서도 비공유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것이 관찰됐다. 이는 물이 매개된 화학적 구조 교환 현상 때문에 생기는 용액 전체의 엔트로피 증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 기대효과

이번 연구는 약한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과 수소결합이 서로 교환을 한다는 걸 실험적으로 잡은 최초의 증거다. 또 피코 초 동안에 일어나는 두 작용 구조 사이의 화학적 교환은,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이 분자 구조를 안정하게 유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구 결과는 작은 분자를 대상으로 이뤄졌지만 비슷한 방법으로 거대 분자 시스템에서의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확장, 연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번에 밝혀진 원리는 단백질이나 핵산 등의 생체분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는 비공유 결합성 상호작용들이 어떻게 단백질 같은 거대 분자 구조를 안정화시키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번에 사용한 이차원 적외선 분광법을 이용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분자 또는 거대 분자의 구조 안정성과 기능에 대해 분자 수준에서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류 지식의 한계를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 복리를 위한 신약 개발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붙임] 용어설명

1. 비공유 상호작용(noncovalent interactions)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화학 결합은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는 ‘공유 결합(covalent bond)’이다. 반면 비공유 상호작용(noncovalent interactions)’은 원자들 간에 전자를 공유하지 않고, 분자 또는 분자 내에서 전자기 상호작용의 분산된 변화를 포함하는 화학 결합을 말한다. 비공유 상호작용의 결합 에너지는 공유 결합 에너지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단백질이나 핵산처럼 큰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또 비공유 상호작용은 거대 분자가 서로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많은 생물학적 과정에도 관여한다. 비공유 상호작용은 ‘수소결합’과 ‘정전기적 효과’, ‘엔 파이 스타(n→π*)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파이(π) 효과’, ‘반 데르 발스 힘’, ‘소수성 효과’ 등 몇 가지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약물이나 재료 설계, 특히 자기조립 현상 등 많은 유기 분자의 합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2. 비공유 n→π* 상호작용(noncovalent n→π* interaction)

분자 내 비결합성 오비탈(n)에서 반결합성 π* 오비탈로 전자의 비국지화가 일어날 때 생기는 약한 화학적 결합 현상을 말한다.

3. 수소결합(hydrogen bonding)

수소결합은 ‘질소(N), 산소(O) 또는 불소(F)와 같은 전기 음성도가 큰 원자와 결합 된 수소 원자’와 ‘고립 전자쌍을 갖는 또 다른 인접 원자’ 사이에 생기는 전기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수소결합이 많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물질이 물(H₂O)이며, 수소결합이 지구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붙임] 그림 설명

그림1. JPC Letters 표지: 수소결합 구조(왼쪽)와 엔-파이스타 상호작용으로 인한 시스 구조(오른쪽)는 물속에서 서로의 구조를 교환한다. 물의 양이 많을수록 수소결합 구조가 많아지고, 두 구조의 교환 속도는 빨라진다. 이런 현상은 물속에서 단백질 같은 분자들이 안정하게 존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림2. 페닐 포메이트 분자를 용매에 녹여 분자 결합 상태를 분석한 그림

(위) 페닐 포메이트의 카르보닐기가 물과 수소 결합을 이루는 경우(왼쪽)와 페닐 고리와 엔-파이스타(n→π*)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오른쪽)의 분자 구조 변화와 그에 따르는 분자 내 오비탈 겹침의 변화. (아래) 피코초 동안에 분자 구조 교환이 있을 때 나타나는 이차원 적외선 스펙트럼. 점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은 구조 교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림3. 기다리는 시간과 물 함량을 바꾸면서 얻은 이차원 적외선 스펙트럼의 모습.

(a-d)는 기다린 시간이 0일 때 페닐 포메이트의 스펙트럼이다. THF와 물의 비율은 (a)에서 1대 1, (b)에서 2대 3, (C)에서 1대 2로 섞여 있고, (d)는 순수한 물이다. (e-g)는 15피코 초 기다린 뒤 얻은 페닐 포메이트의 스펙트럼이며 순수한 물에서 얻은 (h)는 3피코 초 기다렸다. 대각선에 존재하는 봉우리들은 세 구조(시스, 트랜스, 수소결합)에서 얻어진다. 시스 구조와 수소결합 구조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환현상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교차 봉우리가 함께 커진다. 점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교차 봉우리가 존재하는 영역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