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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물리학자들이 ‘저항 변화’가 아닌 ‘유전율(permittivity)’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유전율은 전기장의 영향을 받아 분극이 일어난 정도를 뜻하는 물리량이다. ‘텅 비어 있는 공간(0차원 공허)’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제어해 유전율을 다중 상태로 바꾼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 오윤석 교수팀은 울산대학교(총장 오연천) 물리학과 김태헌 교수팀과 공동으로 ‘0차원 공허’와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물질의 유전율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또 이런 상호작용을 제어해 유전율이 각기 다른 다중 상태로 제어되는 새로운 메모리(Memory) 기술을 개발했다. |
전기가 안 통하는 물질이라도 전기장에 두면 물질 내부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전기쌍극자가 정렬한다. 유전율은 그 반응 정도가 얼마나 민감한지 나타내는데, 물질과 공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오윤석 교수는 “유전율은 어떠한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에서도 정의할 수 있는 물리량”이라며 “별빛이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을 여행해 지구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이유도 유전율로 설명된다”고 전했다. 공동 연구팀은 새로운 강유전체(Ferroelectrics) 박막을 개발해 ‘0차원 공허’를 만들었다. 강유전체는 외부 전기장이 없이도 스스로 분극을 가지는 재료인데, 외부 전기장에 의해 분극 방향이 바뀔 수 있다. 새로운 강유전체 박막은 오윤석 교수팀에서 개발한 새로운 웨이퍼(Wafer) 소재인 ‘바륨지르코늄 산화물(BaZrO₃) 단결정’ 위에 김태헌 교수팀이 ‘티탄산바륨(BaTiO₃)’ 박막을 증착해 만들었다. 이 박막은 기존 티탄산바륨과 전혀 다른 대칭성을 가지는 새로운 강유전체가 된다. 오 교수팀에서 새로 개발한 바륨지르코늄 산화물의 격자상수는 4.189Å으로 기존 웨이퍼들 대비 압도적으로 큰 크기다. 이처럼 압도적으로 큰 격자상수는 티탄산바륨 박막에 ‘0차원 공허’ 즉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0차원 공허와 주변 원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박막 소재의 유전율 크기를 바꾼다. 이렇게 변하는 유전율을 메모리 정보에 사용하면 장점이 많다. 저항을 이용하는 반도체 메모리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발열이 없는 메모리 소자 구현이 가능한 것이다. 또 0차원 공허와 주변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용하면 1과 0만 쓰는 이진법 메모리보다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 ‘다진법 메모리’ 구현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0차원 공허 주변에만 형성된 양자 스핀은 양자 정보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오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직접 개발한 소재 기술 덕분에 0차원 공허가 주변 원자 분극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고 체계적으로 제어해 새로운 유전율 메모리 소재를 구현할 수 있었다”며 “이를 활용하면 전통적인 반도체 소재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메모리 소재나 소자 개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응집물질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2대 저널 중 하나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9월 7일자로 공개됐다. (논문명: Reversibly controlled ternary polar states and ferroelectric bias promoted by boosting square-tensile-str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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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연구 관련 Q&A |
Q1. 메모리 소자나 소재로는 주로 ‘반도체’가 쓰입니다. ‘유전체’를 이용해서 메모리 소자나 소재를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A1. 반도체나 유전체는 모두 일정한 성질을 가진 물질을 이르는 말입니다.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는 상온에서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전도체)와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절연체)의 중간 정도인 물질인데요. 가해진 전압이나 열, 빛의 파장 등에 의해 전도도 및 저항이 바뀌는 성질을 이용해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소자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반도체에 전기를 흘리면서 저항 변화를 이용해 메모리 소자를 구현합니다. 이 방식이 워낙 굳어지다보니 ‘반도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전자장치의 소재나 소자 모두를 아우르는 말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반도체는 전기를 흘렸을 때 달라지는 저항을 이용할 수 있는 물질 즉 재료이고, 이것으로 만든 소자가 반도체 소자입니다. 유전체(誘電體, dielectric material)는 전기장 안에서 극성을 지니게 되는 절연체(부도체)입니다. 유전체는 전기가 흐르지 않지만, 전압에 대해서는 유전체의 음전하가, 음전압에 대해서는 유전체의 양전하가 늘어서면서 극성을 지닙니다. 유전체에 따라 극이 나뉘는 정도가 다르며, 그것을 유전율이라고 하는데요. 이 점을 이용해 메모리 소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도체 소자 대신 ‘유전체 소자’로 메모리 소자를 만들면 반도체가 가진 단점이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
Q2. ‘유전체 소자’가 ‘반도체 소자’보다 좋은 점이 있을까요?A2. 반도체 소자는 전기를 흘려서 변하는 저항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전기를 흘리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열도 발생합니다. 반면, 유전체 소자는 전기가 통하지 않고 대신 유전율 상태를 활용하는 방식이라 에너지 효율이 높고, 열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 유전율이라는 고유 특성으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를 만들 수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비휘발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발견한 것처럼 유전체의 ‘0차원 빈자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공간 사용을 적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재 반도체 소자들은 더 작은 공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집적도를 높이는 게 중요한데요. 유전체 소자가 개발되고 사용된다면 집적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
Q3. 2018년에 ‘바륨지르코늄 산화물(BaZrO₃) 단결정’을 생성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셨다고요. 이 물질이 왜 중요한가요?A3.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단결정을 얇게 자른 웨이퍼는 ‘새롭고 특이한 강유전체’를 만드는 기판 역할을 하기 좋습니다. 이 물질의 격자상수가 4.189Å으로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격자상수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이루고 있는 기본구조의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인데요. 기판의 이 값이 크면 그 위에 형성되는 물질에 사방에서 균일하게 잡아당기는 힘을 가하게 됩니다. 물질 본래의 격자상수에 맞춰 성장하지 않고, 기판의 격자상수에 맞춰서 물질이 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티탄산바륨(BaTiO₃) 본래의 격자상수는 바륨지르코늄 산화물보다 작습니다. 따라서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위에서 티탄산바륨을 성장시키자 사방에서 균일하게 분자 구조를 잡아당겼고, 이 과정에서 산소 원자가 빠지면서 0차원 공허가 생겼습니다. 바륨지르코늄 산화물이 아닌 다른 물질을 기판으로 쓰더라도 사방에서 균일하게 잡아당기는 효과만 만들 수 있으면 0차원 공허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바륨지르코늄 산화물이 이런 조건을 만들기 가장 좋은 물질로 보입니다. |
Q4. 0차원 공허와 원자 간 상호작용을 조절하면서 유전율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어떻게 메모리에 활용할 수 있나요?A4. 빈 공간과 다른 원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고유한 유전율을 변화시킵니다. 최초의 상태가 하나의 값이 될 수 있고요. 전기장을 가해서 분극이 생기면서 달라진 유전율이 또 다른 상태값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장의 방향을 달리하면 분극 방향을 뒤집으면서 또 다른 유전율 상태가 되고요. 이렇게 3가지 상태만 조합해도 현재 0과 1을 이용하는 이진법 메모리보다 정보 저장량이 뛰어난 다진법 메모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
Q5. 반도체 소자와 전혀 다른 방식의 메모리는 어떤 분야에서 응용하기 좋을까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A5. 반도체 소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은 무발열과 소자의 단순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량생산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요. 그래서 당장은 보안 및 군사 분야에서 먼저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차원 공허를 만들게 되면 그 주변에만 양자스핀이 형성되는데, 이는 양자정보 소재로도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향후 0차원 공허와 다른 원자, 그리고 양자스핀 간의 삼중 상호작용을 활용하는 기술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
[붙임] 그림설명 |
그림1. 산소 빈자리로 만들어진 0차원 공허 주변의 크리스탈(결정) 구조 변형.Vo로 표시된 부분은 원래 산소 원자가 위치했던 공간이다.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웨이퍼 위에서 성장한 티탄산바륨은 사방에서 균일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산소 원자가 빠진 빈자리가 생긴다. 이런 0차원 공허 때문에 분자 사이는 기존보다 멀어지며, 다른 원자들과 상호작용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물질의 유전율을 바꾸고, 상호작용에 따라 다양한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상태를 조합하면 다진법 메모리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숫자 0과 1을 조합해서 정보를 저장하는 이진법 메모리처럼 A, B, C 등의 상태를 조합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
그림2.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단결정과 그 웨이퍼. 0차원 공허를 형성하고 다중 유전 상태를 구현하는 핵심이다.바륨지르코늄 산화물 단결정을 만드는 기술은 2018년 오윤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원천특허를 확보하고, 이 원천소재기술을 기반으로 교내 벤처 회사를 창업했다. 이 물질의 격자상수는 다른 물질보다 크기 때문에 이 물질을 기판으로 써서 다른 물질을 성장시키면 특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물질보다 격자상수가 작은 물질을 성장시킬 때 사방으로 균일한 힘으로 잡아당기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바륨지르코늄 산화물 웨이퍼 위에 티탄산바륨을 성장시키자 사방으로 균일하게 당기는 힘 때문에 산소 원자가 빠진 0차원 공허가 형성됐고, 이 덕분에 다중 유전 상태를 구현할 수 있었다. |
그림3. 0차원 공허와 원자 간 상호작용으로 구현된 다중 유전 상태.티탄산바륨에 산소 원자가 빠져 0차원 공허가 된 상태(가운데)와 전기장을 주어서 분극을 유도한 상태(좌우)는 각각 다른 유전율을 보인다. 이런 상태를 조합하면 0과 1을 조합해 정보를 저장하는 반도체 메모리처럼 유전체 메모리를 만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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