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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가 면역공격을 피하는 데 쓰는 단백질을 분해해 암세포를 죽이는 기술이 개발됐다. UNIST 화학과 유자형 교수팀은 암이 면역 회피에 쓰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복합체 조립 기술을 개발했다. 복합체 안에 면역 회피 단백질을 가둬 단백질 분해가 일어나는 리소좀으로 보내는 원리다. 면역계가 암세포를 인식하고 제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암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암세포는 PD-L1이라는 단백질을 정상세포보다 많이 만들어 세포 표면에 내세운다. 면역세포에 ‘공격 금지’ 신호를 보내는 이 단백질 덕분에 암세포는 인체 면역 감시망을 피해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아세타졸아마이드를 기반으로 암세포의 PD-L1만 골라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세타졸아마이드는 암세포 표면에 분포하는 CAIX 효소에 달라붙어 단백질 나노 복합체를 형성하고, PD-L1과 같은 면역 회피 단백질을 세포 안으로 같이 끌고 들어간다. 세포 안으로 들어 온 나노복합체는 비정상 단백질로 인식돼 세포 내 청소 공장인 리소좀에서 분해된다. CAIX 효소는 정상세포에는 거의 없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암세포에서만 이 같은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PD-L1 단백질이 사라진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 대상이 된다.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는 실제로 이 복합체를 주입한 그룹에서 암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PD-L1 단백질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제1 저자인 김도현 연구원 “면역계가 직접 암을 공격하는 경로를 추가로 규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도 이런 단백질을 분해하는 기술은 있었다. PROTAC이나 LYTAC이라고 불리는 키메라 분자를 이용한 기술이다. 키메라 분자는 사자·염소·뱀이 합쳐진 신화 속 괴물 키메라처럼, 여러 개의 기능성 분자가 조합된 다기능성 분자다. 보통은 표적 단백질을 찾아가는 역할의 분자와 단백질을 분해로 유도하는 역할의 분자가 결합한 구조다. 하지만 이런 키메라 분자들은 덩치가 크고 세포 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거나, 복잡한 구조 때문에 설계·합성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예 분자를 몸속에서 스스로 조립하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유자형 교수는 "기존 고분자 기반 키메라 기술 한계를 넘는 새로운 형태의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이라며, "향후 면역항암제와 병용하거나 다양한 난치성 고형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지난 4월 3일에 게재되었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논문명: Cancer Specific CAIX-Targeting Supramolecular Lysosome-Targeting Chimeras (Supra-LYTAC) for Targeted Protein Degradat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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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연구결과 개요 |
1.연구배경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PD-L1 단백질을 이용한다. PD-L1은 면역세포인 T세포의 PD-1 수용체에 결합해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데, 이 단백질이 많아지면 T세포는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인식하고 공격하지 않는다. 이를 차단하기 위한 면역항암제(키트루다 등)가 이미 상용화되어 있지만, PD-L1 자체를 직접 분해해서 제거하는 방식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표적 단백질 분해(Targeted Protein Degradation, TPD)이다. 2001년, 단백질 분해 유도 키메라(PROTAC, Proteolysis-Targeting Chimeras)를 활용한 표적 단백질 분해 기술(TPD, Targeted Protein Degradation)이 처음 제시됐다. 이 기술은 기존 약물처럼 단백질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단백질 자체를 세포 내 분해 시스템을 통해 제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이었다. PROTAC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두 개의 리간드를 링커로 연결한 구조로, 한쪽은 제거할 단백질(POI)을 인식하고, 다른 한쪽은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에 결합한다. 이렇게 세 요소가 결합한 삼자 복합체가 형성되면, 표적 단백질에 유비퀴틴이 붙고, 이후 프로테아좀에 의해 분해된다. 이처럼 사건 기반 약리학(event-driven pharmacology)이라는 개념은, 기존에 접근이 어려웠던 단백질까지도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TPD 기술은 세포 내뿐 아니라 세포 외 단백질까지 확장됐고, LYTAC(Lysosome-Targeting Chimeras) 기술이 등장했다. LYTAC은 표적 단백질과 리소좀 이동 수용체를 동시에 결합시켜, 세포막 표면이나 세포 밖에 있는 단백질까지도 리소좀으로 보내 분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PROTAC이 세포질 내에서 E3 효소를 모집한다면, LYTAC은 세포 외 환경에서 리소좀 이동 수용체를 활용해 작동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최근에는 항체나 압타머 기반 LYTAC, 또는 RGD 수용체, 만노오스-6-인산 수용체 등을 활용한 다양한 변형 LYTAC들이 개발돼 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고분자 기반으로 분자량이 크고, 세포 침투성이 낮으며, 구조 최적화가 어렵고 비용이 높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링커 설계의 복잡성과 비표적 효과(off-target effect) 가능성도 여전히 기술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이번 연구는 바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작됐다. 기존처럼 사전에 조립된 키메라 분자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필요한 시점과 위치에서만 분자들이 스스로 조립되도록 설계해, 표적성과 유연성을 모두 확보한 새로운 LYTAC 전략을 제시했다.
2.연구내용 초분자 자기조립(supramolecular self-assembly)은 여러 분자가 서로 자발적으로 뭉쳐 구조체를 형성하는 현상으로, 최근에는 나노약물전달체나 바이오센서 등 다양한 생명공학 분야에서 플랫폼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이러한 자기조립체는 여러 결합점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다가 결합(multivalent binding) 특성 덕분에, 표적 단백질을 보다 효과적으로 붙잡고 원하는 세포 내 위치로 유도하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TPD 분야에서도 초분자 전략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기존에는 항체, 소분자, 압타머 등을 활용한 PROTAC이나 LYTAC 기술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리포좀, 핵산, 나노입자 기반의 초분자 LYTAC이 보고되며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복합체가 언제, 어디서 작동할지 제어하기 어렵다는 ‘시공간 제어’ 문제가 남아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런 시공간 제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암 특이적 초분자 LYTAC, 즉 Supra-LYTAC 시스템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CAIX(Carbonic Anhydrase IX)를 표적으로 삼아, 해당 단백질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만 나노복합체가 스스로 조립되도록 설계된 펩타이드를 개발했다. 이 펩타이드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하나는 CAIX에 결합하는 아세타졸아마이드 기반 구조, 다른 하나는 면역 회피 단백질인 PD-L1에 결합하는 기능성 리간드를 포함하고 있다. 두 펩타이드는 Pyrene-Phenylalanine-Phenylalanine(Pyr-FF) 구조를 포함하고 있어, 서로 간에 π–π 결합, 소수성 상호작용, 수소결합과 같은 비공유결합(force)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 덕분에, 서로 다른 두 펩타이드가 암세포 표면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모여(co-assembly)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CAIX 효소가 먼저 한 펩타이드와 결합하면서, 조립이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이를 중심으로 나머지 펩타이드가 이어붙으며 이중 기능을 가진 나노섬유형 복합체가 자가조립된다. 형성된 Supra-LYTAC 복합체는 암세포 표면에서 PD-L1을 포획하고, 이를 CAIX와 함께 삼자 복합체(CAIX–nanofiber–PD-L1)로 만든다. 이 구조는 클라트린 매개 내포작용(clathrin-mediated endocytosis)에 의해 세포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화된 복합체는 리소좀으로 이동하며, 그 안의 효소 환경에서 PD-L1이 분해된다.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Supra-LYTAC 시스템의 효과는 확인됐다. 쥐를 이용한 암 모델에서 이 복합체를 투여한 결과, 암의 부피와 무게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면역 억제 단백질인 PD-L1의 발현량도 유의미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 특이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정밀성과 안전성 모두 입증되었다.
3.기대효과 이번 연구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CAIX를 표적으로 삼아, 그 자리에서 스스로 조립되는 나노복합체(Supra-LYTAC)를 이용해 PD-L1 단백질을 분해하는 기술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다. 기존에는 주로 저분자나 항체를 이용해 사전에 조립된 키메라 구조를 활용했다면, 이번 기술은 암세포 환경에서만 선택적으로 조립되고 작동하는 초분자 LYTAC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술의 설계 유연성과 적용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PD-L1은 면역세포의 공격을 차단하는 대표적인 면역 회피 단백질로,현재까지는 이를 억제하는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가 주로 사용돼 왔다. 이번 연구처럼 PD-L1 자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입증됨에 따라, 면역항암제와 병용하거나 기존 치료의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보완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
[붙임] 용어설명 |
1.T세포 (T cell) 암세포나 감염된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면역세포. 2.키메라 분자 사자·염소·뱀이 합쳐진 신화속 괴물 키메라처럼, 여러 개의 기능성 분자가 조합된 다기능성 분자다. 3.항체(Antibody) 면역계가 외부 침입자를 인식할 때 사용하는 Y자형 단백질. 기존 LYTAC은 항체를 리간드로 사용했지만,분자량이 크고 제조가 어렵고, 세포침투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4.리소좀 (Lysosome) 세포 내의 단백질, 소기관, 세포 외부 물질 등을 분해하는 세포소기관. 산성 환경과 다양한 가수분해 효소가 존재한다. 5.프로아테아좀 (Proteasome) 세포 내부에서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제거하는 ‘분해 장치’다. 단백질에 유비퀴틴이 붙으면, 프로테아좀은 이를 인식해 안으로 끌어들인 뒤 잘게 분해한다 프로테테아좀이 세포 내부 단백질을 정밀하게 분해하는 시스템이라면, 리소좀은 세포 안팎의 다양한 물질을 처리하는 보다 범용적인 청소 기구에 가깝다. 6.압타머(aptamer) 특정 단백질에 꼭 맞게 결합하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DNA나 RNA 조각이다. 항체 대신 쓸 수 있을 만큼 정밀한 표적 인식 기능을 갖고 있지만, 체내에서는 쉽게 분해되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안정성과 적용성에서 제한이 있다. 7.유비퀴틴(ubiquitin) 세포 내에서 단백질에 ‘분해하라’는 표시를 붙이는 단백질이다.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은 프로테아좀이라는 세포 내 분해 장치로 보내져 제거된다. 8.CAIX (Carbonic Anhydrase IX) 저산소 환경의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효소. 이번 연구에서는 암세포 특이적 표지로 사용됨.(Carbonic Anhydrase IX) |
[붙임] 그림설명 |
그림1. 암 특이적 CAIX를 표적으로 하는 나노복합체인(Supra-LYTAC) 체내 형성 과정과 단백질 분해 매커니즘. 두 개의 펩타이드가 암세포 표면의 CAIX 효소에 달라붙어 복합체를 형성한 뒤 PD-L1 단백질을 가둬 리소좀으로 끌고 들어 간다. 리소좀에 단백질 복합체의 분해가 이뤄진다. 펩타이드 중 하나인 아세타졸아마이드가 CAIX 효소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특성을 기반으로 설계된 기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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