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뷰티클럽을 열던 화장품 덕후들이 모여 유기농 수제 화장품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유기농이라 우리 몸에 건강할 뿐 아니라 지구에도 건강할 것이란다. UNIST 학생창업 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유니콘 프로젝트(UNICorn Project)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외국인 학생창업팀 ‘마인’을 만나봤다.
쑥스러움은 잠깐, 연신 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따라 전문 모델처럼 척척 자세를 취하는 마인의 팀원들. 이색적인 경험이 마냥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산하며 촬영을 마친 마인의 팀원들과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마인의 무카다스 라모노바(Muqaddas Rahmonova, 생명과학부 16) 대표가 한번 발라보라며 바디 스크럽 샘플 제품을 내밀었다.
하나는 커피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퍼민트로 만든 것입니다.”
푸릇푸릇한 원물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있는 페퍼민트 제품의 향을 맡아보니 알싸한 민트향이 상큼하게 올라왔다. 유기농 재료만 사용해 건강한 화장품이라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하는 무카다스 대표. 촬영할 때만 해도 발랄함이 넘치는 학생이었는데, 인터뷰를 시작하니 어느새 진지한 대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환상의 팀워크
마인은 타지키스탄에서 온 무카다스 대표가 UNIST에서 학생창업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3월에 설립한 새내기 스타트업이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지백 사디코바(Zhibek Sadykova, 자연과학부 15)와 무카다스 대표와 같은 과 선후배 사이인 이경준(생명과학부 13) 학생도 참여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무니사 라모노바(Munisa Rahmonova)라는 팀원이 눈길을 끈다. 바로 무카다스 대표의 친동생이자,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기 때문이다.
부산에 있는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패키지 및CI 디자인 작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SNS로 소통하기 때문에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무카다스 대표가 특별히 초빙한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팀원들 모두 인맥 부자 무카다스 대표의 ‘픽(Pick)’을 받은 능력자들이다. 이경준 학생은 함께 생명과학을 전공하긴 하지만 유난히 무카다스 대표와 같은 수업을 많이 수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카다스 대표의 유학생활을 도와줄 기회가 많았는데, 한국어 통역을 비롯한 회사 운영에 필요한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마인에 참여하게 됐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오픈마켓 업무를 도와드린 경험이 있어 앞으로 인터넷쇼핑몰을 열면 쇼핑몰 운영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중앙아시아 이웃나라 출신이라 친분이 있던 지백은 무카다스 대표가 연 뷰티클럽에 참여했다가 열정을 인정받아 발탁된 경우다. 무카다스 대표는 11세 때부터 모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네트워크 판매원을 했을 정도로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학생들과 화장품이나 화장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생각으로 교내에서 뷰티클럽을 열었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10여 명의 학생이 모여서 화장품에 대한 수다를 떨곤 했는데, 지백 또한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어릴 때부터 뷰티나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카다스의 추진력을 잘 알고 있으므로 믿고 합류했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천연 화장품
화장품을 좋아해 뷰티클럽을 운영하다가 화장품 회사까지 차린 무카다스 대표. 하지만 한국은 아시아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K뷰티의 종주국이 아닌가. 이미 레드오션인 화장품 시장에서 마인은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까.
페이스 용품보다는 바디 용품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몸도 피부인데 피부타입별 전문 제품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개개인의 피부 유형별로 선택할 수 있도록 고객 맞춤형 수제 화장품을 생산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일차적으로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제품 개발에 앞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시장을 알아 본 한 무카다스 대표는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아직 진입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찾았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아 가급적 지구환경을 덜 오염시키는 유기농 제품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소비자 조사 결과, 임신하면서부터 유기농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여기서 힌트를 얻어 첫 번째 대상 고객을 임산부로 정한 것이다.
대상 고객을 정한 후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나선 무카다스 대표와 지백은 캐모마일, 라벤더, 페퍼민트, 시어버터, 코코아버터 등 천연 원료들의 특성과 배합방법 그리고 화학보존제를 대체할 천연보존제 등 화장품 관련 전문서 및 유튜브를 섭렵하며 화장품 공부에 돌입했다. 무카다스 대표는 전공공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며 지난 6개월을 회상했고, 지백은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었기에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됐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화장품을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전혀 몰랐죠.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보며 하나하나 알게 됐어요.”
개인의 피부 유형에 맞게 만들어지는 수제품이기 때문에 판매는 인터넷쇼핑몰에서 개인 주문서를 받은 뒤 이뤄진다. 즉, 피부 유형, 피부 관련 고민, 선호하는 향 등 각 질문에 답변하면 그에 따라 제작된다. 패키지를 디자인한 무니사는 고객별로 패키지 색깔과 캐릭터도 다르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구에도 건강해야죠”
아직 학생인 데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카다스 대표는 어려운 점은 전혀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워낙 긍정적인 편이라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로 뛰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무카다스 대표도 어쩔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한국어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한국인 고객이나 관계자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직 미숙한 한국어가 걸림돌이 되는 것. 지난번에는 서울에서 열린 화장품 박람회에 참여했다가 강연이 모두 한국어로 진행돼 실망감만 안고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요즘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무카다스 대표는 한국어는 서툴지만 화장품을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다.
더는 지구를 오염시키면 안 됩니다. 고객에게만 건강한 게 아니라 지구에도 건강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올가을이면 첫 번째 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한국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진출까지 꿈꾸는 겁 없는 신인, 마인이 K뷰티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전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