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sex)는 생물학적인 성을, 젠더(Gender)는 사회문화적으로 인식된 성을 의미합니다. 과학기술 연구에서 섹스와 젠더 개념이 배제되면서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과학기술 젠더 혁신(Gendered Innovation)’입니다.”
김명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특훈교수가 19일 UNIST 제1공학관 205호에서 ‘과학기술과 젠더 혁신’을 주제로 특강을 펼쳤다. 김명자 교수는 학자이자 장관,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소개하며,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젠더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젠더 혁신은 단순하게 성 평등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연구의 질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며 “젠더를 제대로 바라보고 연구에 반영함으로써 사회가 고루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체계 성별 편향성 바로 잡아라
젠더 혁신이라는 개념은 론다 쉬빙거(londa Schiebinger) 스탠포드대 교수에 의해 도입됐다. 과학사에서 여성의 역할에 집중하던 쉬빙거 교수는 R&D 활동에서 섹스와 젠더라는 개념이 배제되면서 생기는 잘못된 과학기술의 결과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최근 3년간 미국 시장에서 퇴출된 10종의 의약품도 젠더 혁신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동물 조직이나 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신약 임상시험에 대부분 수컷을 이용하다 보니 여성에게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공학 연구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축소판으로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김명자 교수는 “젠더 개념이 결여된 과학기술 연구가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며 “쉬빙거 교수는 젠더 혁신을 위해 여성의 수를 늘리고(fix the number), 제도를 개선하고(fix the institution), 지식체계를 바로 잡으라(fix the knowledge)고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젠더 이노베이션을 위한 정상회의도 개최되고 있다. ‘젠더 서밋(Gender Summit)’이라 불리는 이 회의는 2015년 상반기 아프리카에서, 8월에는 한국에서 열린다. 김 교수는 “젠더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외국에는 과학자 출신 여성 리더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데 한국에서는 젠더 혁신이 쉽지 않다”며 “최근에는 한국도 법조계와 언론계 등에 진출하는 여성인력이 많아졌지만 유독 과학기술 분야에는 변화가 느린 편”이라고 지적했다.
어렵게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여성들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모든 것을 잘하는 ‘슈퍼우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상이 달라졌다”며 “사회 제도를 개선해 젠더 간극을 줄일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활동에 있어서 젠더 혁신을 위한 움직임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여성을 고려한 연구결과를 내야한다는 법안을 제정하려고 진행하는 것이다. 연구개발 지원에 있어 성별을 고르게 고려할 뿐 아니라 실험 결과에 있어서도 성별 자료가 요구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제3차 여성과학기술인력 육성계획에 젠더 분석에 관한 항목이 들어가는 등 젠더 혁신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여성들이 더 많이 일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방법론 익힌 여성’이라 가능했던 삶
“김대중 정부의 3번째 환경부 장관으로 들어가 3년 8개월 간 정부 일을 돌봤습니다. 처음에는 교수 출신에, 여자라고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았죠. 그런데 최우수 부처로 2번이나 선정됐고, 그 정부에서는 가장 오래 장관 자리를 지킨 사람이 됐습니다. 비결을 물으면 두 가지를 대답했어요. 과학적인 방법론을 익힌 것과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김명자 교수는 젠더 혁신 강의에 앞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1971년 교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해도 장관, 국회의원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지적호기심을 갖고 활동한 덕분에 학계와 정부, 국회 등에서 일정한 업적을 남기는 인물이 됐다.
김 교수는 “교수이면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 일과 가정을 모두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졌었다”며 “이 시기에 관심이 가는 분야를 공부하고 책을 쓰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자신이 다양한 길로 가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쓴 책은 20여 권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이 됐고, 관련 활동을 하다가 환경부 장관에까지 오르게 됐다. ‘여교수가 장관 자리에서 얼마나 버티나’는 눈으로 보는 이가 많았지만, 오랫동안 장관직을 지키며 의미 있는 활동을 이끌어냈다.
그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익힌 것은 사회현상을 풀어나갈 때도 큰 도움이 됐고, 여성 특유의 ‘합리성과 감성의 리더십’을 잘 발휘한 것 같다”며 “장관직 이후에는 여성으로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활동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에 소속돼 병영문화개선과 국방 R&D 확충 등에 힘썼다. 이후로도 에너지와 환경, 원자력, 녹색성장, 여성과학기술인 문제 등에서 우리사회의 여성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과학기술은 한계가 없이 넓어지고 있고, 다른 분야와 끊임없이 융합되고 있다”며 “과학기술자로서 훈련 받고 다양한 분야에 지적호기심을 갖다 보면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며 “준비하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기회를 찾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