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해파리는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현란하게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 매우 불규칙해 보이는 움직임이지만 실제로는 먹이 탐색의 효과를 높여주는 지능적인 행동 패턴이다. 한 지역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던 해파리가 먼 지역으로 이동하면 같은 움직임 패턴을 반복하는데, 이를 통해 먹이를 더 잘 찾고 잡아먹으려는 전략이다.
이런 현상을 일러 ‘레비 워크(Levy Walk)’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 수학자 폴 레비의 이름에서 따온 수학적 패턴이다. 한 지역에서 불규칙하고 빈번하게 방향을 바꾸며 움직이다가, 먼 지역으로 이동해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이동 패턴으로 정의된다. 해파리 외에도 꿀벌이나 상어,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원시부족이 먹거리를 찾을 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지능적인 패턴이 동물뿐 아니라 세포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UNIST 연구진을 통해 밝혀졌다. 스티브 그래닉(Steve Granick) UNIST 자연과학부 교수팀(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이 세포 내 물질이 최종 목적지까지 정교하게 운반되는 과정에서 레비 워크가 나타난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포 안에서 물질 이동은 ‘분자 모터(molecular motors)’가 담당한다. 분자 모터는 일종의 단백질인데, 세포 분열이나 세포 내 수송 등 세포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동작을 조절한다. 이들이 배달부가 돼 세포 내부에 도로망처럼 뻗은 가느다란 관(microtubules)을 따라 이온과 당, 아미노산 같은 물질을 특정 장소로 운반하는 것이다.
그래닉 교수팀은 세포 내 물질 운반 원리를 밝히기 위해 분자 모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결과 분자 모터가 여기저기 목적지를 찾아 무작위로 주위를 자세히 살피고, 때때로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파리 등 동물에서 나타나는 레비 워크가 세포 속 물질 운반 과정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그래닉 교수는 “세포 속에서 레비 워크가 나타나는 이유는 이동 방향에 대한 경향성 때문”이라며 “가까운 곳을 이동하고 탐색할 때는 자주 방향을 바꾸지만 먼 거리에 목표가 있으면 그 방향을 향해 지속적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기억 기능이나 지능이 없는 분자 모터가 물질을 전달할 때 정해진 목적지를 효과적으로 찾는 원리를 발견한 데 있다. 레비 워크의 패턴을 인공적으로도 재현할 수 있어 경로를 효율적으로 탐색해 목표에 접근하는 새 메커니즘으로써 응용가능성이 높을 전망이다.
그래닉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 내 물질 이동과 인간 몸의 작동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레비 워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새로운 인공능동물질을 개발하거나 효율적인 물질 전달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에너지국(DOE)의 지원을 받아 IBS 연구단과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공동 연구 및 협력해 이뤄낸 성과다. 관련 논문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 IF 36.4)’ 3월 30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