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의 등장으로 우리가 알던 자동차는 점점 사라진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세계 자동차 회사의 판도도 달라질 것이다.”
19일 오후 4시 UNIST 경영관 101호에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 세계적인 한인 자동차 디자이너 임범석 교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동차의 종말과 미래의 모빌리티’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며, 미래 자동차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1897년 런던과 1910년 뉴욕을 촬영한 사진에서 마차를 보여주며 자동차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동차는 사진술이나 전기, 무선통신보다 훨씬 늦게 등장했지만 현재 커다란 산업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말(horse)이 필요 없는 운송수단’이라는 발상에서 자동차가 탄생했다”며 “내연기관이 등장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마차’의 시대에 상상할 수 없었던 ‘자동차’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나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는 위기를 맞고 있다. 또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기존처럼 4~5인 기준으로 만들던 승용차도 달라질 전망이다. ‘바퀴 4개 달린 차체에 의자에 앉아 핸들을 조작하는’ 기존 자동차와 전혀 다른 자동차가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90%가 인간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보고가 있다”며 “자동차가 능동적으로 위험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다면 안전벨트나 에어백 같은 장치는 필요 없어지며, 그만큼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울산 업체들도 새로운 변화에 맞춰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당장 뛰어들어야 할 부분은 전기차 관련 부품이나 소재 개발이다.
임 교수는 “전기차 기술의 등장으로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는 점점 사라져 갈 것”이라며, “마차를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회사로 이어지지 못했듯 현재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앞으로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분야는 누구에게나 출발선이 같은 만큼 업계 모두가 관련 기술에 뛰어들어야 할 시점”이라며 “100년에 한 번 올 법한 기회를 잡아야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특강을 주관한 정연우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울산 및 경남 지역의 기업체와 학생들에게 미래 먹거리에 대한 단서를 던져주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임범석 교수는 한국인 최초 GM 디자인 센터 근무, 최초의 비일본계 혼다 동경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이너 등 화려한 경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이 좋아 1984년 세계적인 디자인스쿨인 미국의 ‘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rt Center College of Design, ACCD)’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모교의 운송기기디자인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특강 말미에 그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도 건넸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을 끄집어내 기술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다. 임 교수는 “기술이나 도구는 반드시 발전하게 돼 있다”며 “현존하는 기술에 국한하지 않고 멀리 미래를 내다본 새로운 디자인에 도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특강은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의 ‘2015 해외석학 초청 세미나’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 날 강연에는 지역 기업체, 경남, 대구, 부산 대학생, UNIST 재학생, 교직원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