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바르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가 개발됐다. 음극과 전해질, 양극을 차례대로 바르고, 각 단계별로 자외선만 쬐어주면 배터리가 완성된다. 네모난 배터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자기기 디자인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안경이나 유리컵 등 어떤 사물에나 배터리를 붙일 수 있어 사물인터넷 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어떤 전자기기에나 원하는 모양으로 얇게 입힐 수 있는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했다. 리튬이온전지는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의 일종으로, 휴대전화에 널리 사용된다.
현재 상업화된 리튬이온전지는 시트(sheet) 형태의 양극과 음극, 분리막을 서로 포개 만든다. 서로 포개진 세 요소를 정해진 크기의 포장재 케이스에 넣고 액체전해질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를 가진 배터리는 전자기기 디자인에 한계를 가져온다. 전자기기 내부에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을 미리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영 교수팀은 배터리 제조 방식 자체를 바꿨다. 배터리 구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끈적끈적한 상태로 만들어 차례대로 바르고 굳힌 것이다. 배터리를 이렇게 만들면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 전자기기를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우선 양극과 음극, 전해질 물질을 각각 ‘조청’ 같은 점성(점도 700포와즈)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 배터리를 부착할 사물 위에 음극, 전해질, 양극의 순서대로 발랐다. 각 요소를 바를 때마다 1분 이내로 자외선에 노출시켜 배터리를 굳혔다.
이번 논문에 제1저자로 참여한 최근호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각 물질이 끈적끈적해 사물 위에 배터리가 그대로 달라붙게 된다”며 “자외선에 노출시키므로 최종적인 배터리는 고체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프린팅 공정으로 만든 배터리는 유리컵이나 안경 등 원하는 사물 어디에나 글자, 하트 모양 등으로 구현할 수 있다. 배터리를 기기별 특성에 맞게 빠르고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상영 교수는 “기존 전지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해액 주입 공정 및 분리막이 필요 없고 5㎜ 막대에 반복적으로 감아도 폭발 없이 성능이 유지될 만큼 유연했다”며 “‘기기맞춤형 얇고 휘어지는 리튬이온전지’의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착용형 기기 및 사물인터넷 시대를 여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였던 전원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차세대 전자 기기들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자지원)과 교육부의 BK21플러스사업을 통해 수행했다. 연구 결과물은 나노과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지 8월 12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