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계의 엄친아’로 불리는 ‘다강체’가 상온에서 작동하는 비밀이 풀렸다. 차세대 메모리 소자 후보로서 다강체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이준희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가 ‘비스무트 산화철(BiFeO₃)’이라는 다강체가 상온에서 작동하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물질에 자기장을 걸었을 때 나타나는 전기적인 성질도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치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물리 분야의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 11월 13일자에 게재됐다.
다강체는 두 가지 이상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 물질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자성(磁性, magnetism)’과 ‘유전성(誘電性, dielectric)’을 가진 경우를 이른다. 자성은 자석처럼 N극과 S극으로 나뉘는 성질이고, 유전성은 양극(+)과 음극(-)으로 나뉘면서 전기적인 성질을 띠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두 상태로 나뉘는 성질을 이용하면 메모리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양극이 위에 있는 경우를 ‘1’로, 음극이 위에 있는 경우를 ‘0’으로 인식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다강체는 자기장과 전압 모두를 이용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 자기장이나 전압 중 하나만 있어도 조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N-S극 정렬뿐 아니라 양-음극 정렬에 따른 정보 저장도 가능해 저장 효율과 집적도도 높아진다. 또 기존 메모리에서 자기장을 생성하느라 들어가는 전력과 이에 따른 발열도 줄일 수 있어 소비전력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이 때문에 다강체를 ‘물질계의 엄친아’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다강체를 메모리 소자나 센서 등에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기존에 알려진 다강체들은 대부분 영하 수십~수백℃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만 작동했기 때문이다. 또 자성과 유전성이 서로 영향을 주는 정도도 크지 않아 응용 가능성도 낮았다. 최근 15년 동안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다강체인 ‘비스무트 산화철’은 상온에서 작동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성과 유전성이 서로 영향을 주는 정도, 즉 ‘결합 크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준희 교수는 다강체에서 ‘스핀(spin)’이 ‘전기분극’으로 연결되는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을 개발했다. 스핀은 자기장을 걸어주면 N극과 S극이 서로 바뀌는 현상을 말하고, 전기분극은 물질 내부에서 양극과 음극으로 나뉘는 상태를 가리킨다.
새로 개발한 방법으로 비스무트 산화철에서 스핀이 전기분극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주는지 계산했다. 그 결과 N극과 S극이 서로 바뀔 때 전기분극이 약 3C/㎠ 정도를 기록했다. 이 정도 결합크기는 다른 다강체에 비해 10~1000배 정도 큰 값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기록 중 가장 크다. 이는 다른 다강체의 비해 10~1000배 정도의 안정적으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준희 교수는 “15년 동안 가장 많이 연구된 비스무트 산화철에서도 스핀과 전기분극이 결합되는 원리나 결합 크기가 전혀 규명되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이 다강체에서 스핀과 전기분극이 강력하게 결합한다는 점을 밝혀냈고, 기존에 해석하기 어려웠던 물리 실험들을 설명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강체의 원리를 설명하는 정교한 이론과 모델은 새로운 메모리 소자나 센서 등을 개발하고 새로운 소자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번 결과는 다른 다강체의 스핀과 전기분극을 계산할 뿐 아니라, 물질들 안의 다양한 물성들이 서로 결합하는 원리를 밝히는 데도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