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화학 교과서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지 모른다. 알코올에서 산-염기 반응이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관찰한 덕분이다. 이 결과는 산-염기 반응을 설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연과학부의 권오훈 교수팀은 ‘알코올의 탈수반응’에서 일어나는 산-염기 반응의 세부 과정을 규명해 ‘캐미스트리 유로피언 저널(Chemistry-A European Journal)’ 9일자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유기화학 반응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케미스트리 유로피언 저널 측은 “매우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하며 이 논문을 ‘핫 페이퍼’로 선정함과 동시에 표지로도 소개했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는 알코올 탈수반응이 일어날 때 ‘알코올과 산성 물질의 분자가 1대 1로 대응한다’고 설명해왔다.
그런데 권오훈 교수팀의 연구 결과, 알코올 분자 여러 개가 뭉쳐서 산성 물질에 반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코올의 탈수반응은 알코올이 산성을 만나 물과 다른 물질(알켄 등)로 분해되는 현상이다. 이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화학반응 중 하나로, 공업용 물질의 합성은 물론 체내 소화 등에서 나타난다.
권오훈 교수는 “알코올에서 산-염기 반응은 분자 하나끼리 대응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여러 분자들이 뭉치는 과정이 숨어 있었다”며 “이번 연구로 알코올 분자 사이에서 수소 원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수소결합’을 관찰하는 데 성공해 숨은 과정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권 교수팀의 ‘초고속 분광기’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 분자끼리 반응하는 시간은 매우 짧아 기존 장비들로 각 과정을 관찰하기 어렵다. 하지만 초고속 분광기는 1초를 1000억분의 1로 쪼개서 분석하므로 분자반응의 각 순간까지 포착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물에서 일어나는 산-염기 반응은 단계별 매커니즘이 규명돼 있지만 알코올의 산-염기 반응에서 중간 과정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는 물뿐 아니라 다른 용매에서 일어나는 산-염기 반응의 매커니즘을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알코올에서도 물에서처럼 반응 중간에 수소결합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알코올 분자 2개가 뭉치면서 염기도가 증가한다. 이번 연구로 분자끼리 뭉친 분자 송이의 반응성이 더 커져 반응 효율이 높아진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권 교수는 “산-염기 반응은 화학은 물론 생물계의 대표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기본반응”이라며 “이에 대한 숨은 원리가 풀린 것은 화학, 에너지, 환경, 생명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KAIST EEWS 대학원의 정유성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