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아닌 금속나노입자를 이용해 논리회로 및 센서 같은 전자소자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됐다. 딱딱하고 물에 취약했던 기존 반도체 소재의 한계를 극복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Bartosz Grzybowski) 자연과학부 교수(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 그룹장)가 이끄는 연구진이 전하를 띠는 분자로 기능화시킨 금(Au) 나노입자를 이용해 처음으로 반도체 물질 없이도 회로 및 센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전하를 띠는 분자로 변신한 금 나노입자는 유연하고 물기 있는 환경에서도 작동해 기존 반도체 기반 전자소자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반도체 칩은 전자기기에서 복잡한 회로를 만드는 필수 부품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물기가 있으면 회로가 망가지고 만다. 또 유연하지 않아 최근 각광받고 있는 웨어러블(wearable) 전자소자를 개발하기 어렵다. 이에 연구자들은 습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전자회로를 만들 수 있는 물질과 유연한 전자소자(flexible electronic devices)에 쓰일 새로운 물질을 찾아왔다.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습한 환경에서도 작동하고, 유연한 전자소자로도 만들 수 있는 ‘전하를 띠는 금속입자’를 선보였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양전하(+)와 음전하(-)를 띠는 분자로 각각 코팅한 금 나노입자를 맞붙여 한쪽으로만 전자가 흐르는 소자(다이오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접합시켜 전자의 방향성을 만드는 다이오드(diode)와 같은 기능이다. 이 소자를 응용하면 복잡한 회로를 설계해 센서나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다.
지보브스키 교수는 “양전하를 띤 부분과 음전하를 띤 부분을 붙이면 이온 이동이 일어난다”며 “이온들은 물에서도 잘 확산되므로 반도체 회로와 달리 물기가 있거나 습한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금 나노입자 층으로 만든 단순한 회로를 응용해 3가지 논리 게이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AND(A 그리고 B), OR(A 또는 B), NOR(A도 B도 아닌) 세 경우에 각각 다른 전압을 나타낸 것이다. 이 논리회로는 유연한 기질 위에 만들 수 있었고 심하게 휘어져도 작동했다.
금 나노입자를 둘러싼 전하에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붙일 수도 있다. 이 점을 이용하면 습도나 가스, 금속 이온 등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극히 미세한 각종 화학반응에 따른 변화를 전기신호로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제로 습기 측정과 염산 등 유독성 가스를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금속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반도체와 유사한 기능을 보이는 물질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례”라며 “금 나노입자에 전하를 붙이는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반도체 회로에서 못하던 기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이 기술은 습한 환경에서 쓸 수 있는 논리회로를 설계할 수 있는 촉망받는 접근법”이라며 “추가적인 공정이 개발된다면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하듯 금 나노입자를 층으로 쌓아 복잡한 회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노로지(Nature Nanotechnology)’ 3월 14일자 온라인 판에 공개됐으며, 4월호에 출판될 예정이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교신저자이며, 중국 국립나노과학기술센터의 용 얀(Yong Yan) 박사가 제1저자로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누맛 테크놀로지(NuMat Technologies)도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