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기기는 사생활 침해 같은 윤리 문제를 떠나 사람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심장이나 신장의 기능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도 높아질 거예요.”
폴란드 출신 과학자인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자연과학부 특훈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연구성과가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 내용은 3월 28일자 ‘한국경제신문’ 19면 머리기사로 소개되며 과학기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쥐보프스키 교수팀은 금 나노입자를 활용해 잘 휘고 습한 곳에서도 작동하는 ‘화학 전자회로(chemoelectronic circuits)’를 개발했다. 이는 곧 반도체 없이도 작동하는 전자회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반도체 칩의 트랜지스터 개수가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성능도 두 배씩 좋아질 것이라는 ‘무어의 법칙’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과학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포스트 반도체’ 시대를 대비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모두가 전자기기엔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 소자를 개발했다”며 “나노입자 표면에 수분이나 가스와 결합하는 화학물질을 붙일 수 있어 다양한 센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지보브스키 교수와 일문일답
1. 최근 전 세계적으로 웨어러블 기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웨어러블 기기의 연구가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궁금합니다.
착용가능한 웨어러블 기기와 이식형 전자기기에 대한 연구가 정말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선도적인 연구자를 고른다면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샴페인(UIUC)의 존 로저스(John A. Rogers) 교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올 9월부터 노스웨스턴 대학 정교수 임용 예정)
웨어러블 기술의 핵심 재료는 일반적으로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인데요. 이 반도체는 건조한 상태에서만 제대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젖은 상태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면서 독성이 없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금과 은을 기본 재료로 삼은 건 무독성 조건 때문이에요. 그런데 금과 은을 사용하는 도중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생겼습니다. 밴드갭(전자이동 가능한 에너지 전위, 공간)이 없는 금속으로 전자기기의 부품을 만드는 게 사실 불가능했으니까요.
저희 연구에서는 금속에 전하를 띠게 한 후 나노입자에 올려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면 금속 주변에 상반되는 이온(카운터 이온, Counter-ions)이 반도체의 P 혹은 N 전달, 이동체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거든요. 흔히들 전자기기라고 하면 떠올리는 연구 내용과 비교할 때 상당히 참신한 방법이라 할 수 있죠.
2. 본인의 연구 외에도 최근 가장 주목할만한 다른 연구자의 연구결과를 소개해주세요.
말씀 드렸듯이 존 로저스 교수가 이 분야의 선도적 연구자입니다. 몇 년 전, 로저스 교수는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굉장히 얇으면서 휘어질 수 있는 실리콘을 개발했습니다. 요즘 로저스 교수는 여기에 무독성 조건까지 충족할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또 한 명 주목할 만한 연구자는 하버드 대학의 찰스 리에버(Charles M. Lieber) 교수입니다. 저는 로저스 교수의 연구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만,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리에버 교수의 이식형 전자기기에 관한 논문이 실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웨어러블 기기 산업에서 상용화는 굉장히 중요한 단계인데요. 성공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충족되어야 할까요?
저희 연구그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 번 상용화 관련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연구에만 매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상용화에 할애할 시간이 없습니다. 음… 삼성이나 엘지 같은 ‘대기업’이 흥미를 보인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긴 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저희 연구자들과 달리 ‘실질적인’ 상용화를 ‘제대로’ 해낼 역량이 있으니까요. 하하(웃음)(웃음)
4. 웨어러블 기기 산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웨어러블 기기가 미래를 어떻게 더 바꿀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사람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웨어러블의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사생활 침해와 같은 많은 윤리적 문제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죠. 그래도 연구진들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고 생체적용에 적합한 기기를 많이 만든다면 어떨까요? 심장이나 신장의 기능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도 높아질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인류의 건강을 위한 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5. 한국에 오기로 결심한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IBS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UNIST에 위치한 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 단장님인 스티브 그래닉 교수님을 통해 IBS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24년을 보냈으니 당연히 한국행은 약간은 모험이었지만 첫 방문에서 역동적인 한국의 분위기와 빠른 과학발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정말 좋아요.
한국인과 제 고향 폴란드인은 정서적으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개방적이고 소통에 능하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두 국가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것이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일본 중국이 이웃에 있고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가 있죠). 두 국가 모두 힘들게 평화로운 시기를 얻어냈고 자유를 즐기며 나라와 경제 재건에 최대한 그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물론 IBS의 시설도 굉!장!히! 인상 깊었으며 학생들 수준도 뛰어납니다. 제 집사람이 또 한국에 와 보고 너무 좋아하니 결정은 이미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죠. 하하
6. 과거 제자였던 박사들이 교수가 되어 연구에 참여했고 정말 굉장한 연구결과를 도출해내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셨나요?
제 학생이었거나 제 밑에서 박사 후 과정을 지낸 15명의 교수와 연락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스카이프 같은 현대 기술 덕분에 의사소통도 하고 이미지나 슬라이드를 주고받으며 협업이 가능합니다. 전화나 우편밖에 없던 30년 전에는 아마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3대륙에 퍼져있는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7.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협력해 연구를 하는데, 어떻게 그들과 협력하나요?
협업은 아이디어와 전문지식을 교환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한 그룹이 필요한 아이디어와 전문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죠. 또한 신뢰하는 친구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제 친구들과 연구하며 수년 동안 계속 연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업이 참 좋습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협업을 통해 서로 힘을 합치고 결국 진보가 가속된다고 봅니다.
8. 울산에서의 생활은 어떠세요?
저와 집사람(집사람 역시 UNIST에서 세포생물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모두 이곳에서의 생활을 매우 즐기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부산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캠퍼스는 멋지고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아침에 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도 좋습니다. 평화롭고 또 과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장소죠. 사람들이 정말로 다들 친절해요. 함께 연구하는 환상적인 연구 조력자들도 여러 명 있죠. 소시지가 그립긴 하지만 김치를 즐기는 법도 배웠습니다. 하하하
9. 이번 연구결과를 첨단연성물질 연구단과 연결지어 설명해주신다면?
호기심과 약간의 고집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들 전자기기는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더 진지한 동기도 있었죠. 화학 수용체를 실리콘보다는 금속나노입자에 올리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금속 입자를 전자기기에 활용하면 전자기기를 화학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전자기기가 화학 신호를 감지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되죠. 실제로 가능함이 입증되었고 저희는 이 물질을 ‘화학 전자기기(chemoelectronic)’라고 명명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최종적으로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실렸죠.
10. 앞으로의 연구 목표와 미래 연구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아! 저희 연구실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20개가 넘습니다. 신소재에서 암-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프로젝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알려진 전지시스템 중 최고의 파라미터(parameter)를 갖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지를 곧 출시할 예정입니다. 또 전체 가시 스펙트럼을 걸쳐 발광이 가능한 물질에 대한 논문도 곧 발표할 것입니다.
화학 쪽으로는 오래된 난제 중 하나인 컴퓨터가 화학적 합성 모델과 계획을 세우도록 설계하는 것을 해결했습니다. 논문은 한 일주일쯤 뒤에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실제 게재될 것입니다. 사실 컴퓨터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데 말씀 드렸다시피 저희가 해냈습니다, 하하.
이외에도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다국적 연구자로(한국,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구성된 그룹으로 저희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난제 해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인터뷰 진행 및 번역: IBS 대외협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