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 치료에 면역반응을 활용하는 항암백신이 주목받고 있다.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맞춤형 면역세포를 만들어 암을 예방‧치료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쓰일 ‘백신 배달부’를 UNIST 연구진이 개발했다.
강세병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항원(병원체)을 면역세포로 전달하는 단백질 나노입자, ‘인캡슐린(Encapsulin)’을 개발했다. 인캡슐린이 항원을 면역세포의 일종인 수지상세포로 전달하면, 이 항원만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해 원하는 암세포만 공격하는 맞춤형 면역세포가 만들어진다.
수지상세포는 면역계에서 교관 역할을 한다. 특정 항원을 잡아먹고 표시함으로써 ‘미분화된 T세포’에게 공격대상을 알려준다. 그러면 T세포가 특정 항원만 기억해 공격하는 ‘맞춤형 T세포’로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는 수지상세포로 특정 암 항원을 잘 전달해야 하는데, 이때 인캡슐린을 쓰면 효과가 높아진다.
기존 백신들은 바이러스 또는 세균성 질환 같은 감염병 예방에 주로 사용됐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유사체나 죽은 세균체들이 직접 써서 몸에 항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일부 바이러스의 유전체나 세균체들이 체내에 남아 다양한 부작용이 생겼다. 또한 이들은 감염성 질환의 예방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돼 암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을 위한 백신 개발이 오랫동안 요구됐다.
강세병 교수팀은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단백질 나노입자인 인캡슐린을 개발했다. 열을 좋아하는 균인 서모토가 마리티나(Thermotoga maritina)에서 생성된 이 단백질 나노입자는 바이러스와 모양과 크기가 유사하다. 그 내부에 유전체와 같은 다른 물질이 없고, 면역반응을 이끌어 낼 최적의 크기와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연구에 제1저자로 참여한 최봉서 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수지상세포는 인캡슐린에 붙여 전달한 항원을 잘 잡아먹고, 미성숙 T세포에 전달하는 과정이 관찰됐다”며 “이를 통해 원하는 항원에만 반응하는 맞춤형 T세포를 만들어내는 것도 확인돼 백신으로서 가능성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흑색종양 생쥐를 이용해 맞춤형 T세포가 실제로 암세포를 공격하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인캡슐린을 이용한 백신이 흑색종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효과를 나타냈다. 인캡슐린으로 항원을 전달해 맞춤형 T세포를 만들어낸 경우가 항원만 전달한 경우보다 효과적으로 암 생장을 억제한 것이다.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문효진 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인캡슐린은 박테리아를 통해 쉽게 생산할 수 있다”며 “앞으로 경제적이고 강력한 항암백신으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세병 교수는 “새로 개발된 항원 전달 백신은 감염성 질환에 집중돼 있던 백신 개발의 한계를 넘을 것”이라며 “암뿐 아니라 류머티즘, 파킨슨 병 같은 비감염성 난치질환에도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순천향대학교 의생명연구원(SIMS)의 류성호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故 도윤경 생명과학부 교수도 연구 설계에 참여했다. 연구 지원은 한국연구재단의 선도연구사업과 해양수산부의 다부처 유전체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 성과는 ‘ACS Nano’ 7월 8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