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송송 뚫린 물질의 속을 원하는 대로 만드는 방법이 개발됐다. 겉과 속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어 촉매나 기체 저장, 약물전달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최원영 자연과학부 교수와 곽자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나노 다공성 물질의 내부 구조를 손쉽게 만드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해 1월 4일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했다. 단계별로 따라하면 정교한 구조도 간단하게 합성할 수 있다. 용도에 맞는 다공성 물질을 설계하고 성능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기존에도 금속 계열의 나노물질의 겉과 속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기술은 나왔다. 하지만 다공성 물질의 내부를 조절하는 기술은 이번에 처음 보고됐다. 최원영 교수는 “다공성 물질의 구멍 크기와 모양을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서 내부 구조를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연구 의미를 밝혔다.
다공성 물질은 표면적이 넓어 화학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점 때문에 촉매나 기체 포집물질 등으로 활용도가 높다. 지금까지는 ‘제올라이트’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다공성 물질이 주로 이용됐는데, 구멍 크기와 모양을 조절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과학자들은 유기분자와 금속을 이용해 스스로 조립되는 다공성 물질을 개발했다.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 MOFs)’와 ‘금속-유기 다면체(Metal-Organic Polyhedral, MOPs)’가 대표적이다. 둘 모두 구멍이 송송 뚫린 물질인데, MOPs는 용매에 잘 녹고 MOFs는 쉽게 녹지 않는 성질이 있다.
이번 연구에 제1저자로 참여한 이지영 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MOFs는 금속과 유기분자가 연결돼 3차원 구조를 이룬 형태이고, MOPs는 다공성 입자가 뭉친 점 형태”라며 “둘을 적절히 조합하면 다공성 물질의 안팎을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팀은 우선 MOPs를 합성한 뒤 유기물을 더해서 아몬드 초콜릿처럼 겉과 속이 다른 물질로 꽉찬 ‘코어–쉘 구조’를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 용매를 써서 MOPs를 녹여내면 가운데가 빈 ‘싱글–쉘 중공구조’을 얻을 수 있다. 싱글-쉘 구조에서 MOPs를 다시 성장시키면, 러시아 인형을 닮은 ‘마트료시카(matryoshka) 구조’가 된다. 이 상태에 다시 유기물을 첨가한 다음 용매로 녹여내면, 가운데가 비고 껍질이 두 개인 ‘더블–쉘 중공구조’까지 만들 수 있다.
최원영 교수는 “하나의 결정에 서로 성질이 다른 물질을 공존시키는 게 큰 특징”이라며 “구멍의 크기와 모양도 조절할 수 있어 분자의 출입을 세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합성법으로는 2㎚ 미만의 미세기공과 2~50㎚의 메조기공, 50㎚보다 큰 거대기공이 모두 존재하는 새로운 다공성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계층적 다공성 구조는 에너지 연구의 촉매, 흡착, 분리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곽자훈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이번 결과는 에너지 연구에 필요한 신물질을 개발하는 데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며 “나노입자와 결합된 이종 물질을 합성하는 등 나노과학의 여러 분야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