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기에 쓰이는 금속/반도체 접합 다이오드의 성능을 높일 기술이 개발됐다. 50년 넘게 못 풀었던 금속과 반도체 경계면 문제를 해결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박기복 자연과학부 교수팀은 금속과 반도체 사이에 그래핀을 끼워 넣어 ‘이상적인 다이오드’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나노 레터스 (Nano Letters)’ 1월호에 발표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당장 그래핀을 쓸 수 있는 방법이라 산업적으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반도체 표면에 금속막을 증착해 만드는 금속/반도체 접합 다이오드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되고 대표적인 반도체 소자다. 그런데 두 물질의 접합면에서 서로간의 원자가 뒤섞이는 현상이 나타나 이상적인 다이오드 제작이 어려웠다. 접합면에서 원자들이 확산되면 물질 간 경계가 흐려지고 전류 누설이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박기복 교수팀은 이 문제를 금속과 반도체 접합면에 그래핀을 끼워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그래핀이 두 물질 사이에 들어가자 원자끼리 섞이는 현상이 거의 사라지고 동작 특성도 이론적 예측과 잘 부합한 것이다.
박기복 교수는 “그래핀을 이루는 탄소 원자 사이 공간에는 양자역학적 전자 밀도가 높아 어떤 원자도 투과할 수 없다”며 “이런 특성을 지닌 그래핀을 금속/반도체 접합면에 끼워 넣으면 기존에 피할 수 없었던 원자 확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또 ‘실리콘 반도체의 경우 금속의 종류에 관계없이 접합면의 전기적 특성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적 예측을 확인했다는 물리학적인 의미도 있다고 논문의 제1저자인 자연과학부 석‧박사통합 과정의 윤훈한 학생은 밝혔다. 원자는 통과할 수 없고 전기는 잘 통하는 그래핀 확산 방지막의 특징이 반세기 이상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이론의 타당성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 부분은 새로 제작한 금속/그래핀/반도체 접합 다이오드의 전자 에너지 장벽을 측정하는 실험을 통해 검증됐다. 여기에는 UNIST 대학원생 4명(윤훈한, 정성철, 최가현, 김준형)이 학부생 시절 개발한 ‘내부광전자방출 측정 시스템’이 크게 기여했다. 이 시스템은 2012년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학부생연구프로그램 과제의 결과로 개발된 것이다.
박 교수는 “학부생 때부터 지금까지 연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학생들이 팀을 꾸려 수행해 왔다”며 “한 가지 주제를 끈기 있게 탐구하면서 얻어낸 가치 있는 연구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UNIST 연구지원본부의 정후영 교수, 자연과학부의 김관표 교수, 신소재공학부의 권순용 교수, 울산대학교 물리학과의 김용수 교수도 공동으로 참여했다. 연구 지원은 한국연구재단의 일반연구자지원사업, 원자력연구기반확충사업, 글로벌박사양성사업을 통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