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잘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가위처럼 자르는 물질이 개발됐다. 금속이 가운데 들어간 독특한 구조의 이 물질은 실제 치료제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임미희 자연과학부 임미희 교수팀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절단할 수 있는 전이 금속 기반의 착물(complex)을 개발했다. 이 내용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JACS) 15일자 표지로 출판됐으며, 주목할 만한 논문(JACS Spotlights)에도 선정됐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로 성인의 사망원인 6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다. 아직 명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요소들이 원인 물질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관찰되는 노인성 반점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신경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주요인자라는 보고가 많다.
임미희 교수팀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독성을 낮추는 방법으로 금속 착물을 이용해 절단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기존에도 금속 착물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생체 내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물질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테트라-엔 메틸레이티드 클램(tetra-N methylated cyclam, 이하 TMC)’이라는 결정 구조를 이용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가수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수분해는 물 분자가 작용해 분자의 결합구조를 끊는 방식이다. 금속 이온을 중심에 배치한 TMC 구조는 외부의 물을 끌어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결합을 효과적으로 잘랐다.
이번 연구에서는 TMC 구조 중심에 코발트, 니켈, 구리, 아연 4가지 금속이 배치됐다. 이중 코발트가 중심에 들어갈 경우 가수분해 활성이 가장 높았다.
특히 코발트 기반 금속 착물(Co(II)(TMC))은 뇌-혈관 장벽을 투과할 잠재력이 있었다. 또 비(非)아밀로이드성 단백질에서는 가수분해 활성이 낮았다. 이 물질이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유발하는 독성을 완화시켜주는 효과도 살아있는 세포 실험을 통해 관찰됐다.
임미희 교수는 “코발트 착물은 가수분해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결합을 끊어 독성을 낮출 뿐 아니라 이 단백질에서 나온 독성 자체를 낮출 수도 있다”며 “뇌-혈관 장벽을 투과해 뇌 속의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과 만날 수 있으므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로서의 잠재력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화학회회지의 편집장이 직접 표지 논문으로 제안할 정도로 눈길을 모았다.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용 원리까지 상세하게 제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까지 탄탄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임 교수는 “표지와 동시에 선정된 ‘주목할 만한 논문’은 학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연구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에서 과학자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이라며 “이번 연구가 흥미를 끌 뿐 아니라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중요한 연구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조재흥 교수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박기영 교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김선희 박사도 공동으로 참여했다. 연구 지원은 한국연구재단과 UNIST 미래전략지원과제 등을 통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