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과 함께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NT)를 원하는 대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뛰어난 특성을 가졌지만 제작이 까다로웠던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을지 주목되고 있다.
UNIST 신소재공학부에 2월부터 합류한 펑 딩(Feng Ding) 특훈교수(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 그룹리더)는 징 장(jing Zhang) 베이징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평형 탄소나노튜브(horizontal carbon nanotubes)’를 선택적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원하는 물성을 가진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이번 연구는 네이처(Nature) 2월 15일자에 게재됐다.
그래핀과 더불어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CNT
탄소나노튜브(CNT)는 머리카락 10만 분의 1 정도의 굵기를 가진 탄소 구조체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을 이룬 흑연판이 튜브처럼 길게 말린 형태로 알려졌다. 흑연판으로 된 벽(wall)의 숫자에 따라 단일벽 탄소나노튜브(Single-walled carbon nanotube; SWCNT)나 다중벽 탄소나노튜브(Multi-walled carbon nanotube; MWCNT) 등으로 구분된다. 또 여러 개의 탄소나노튜브가 뭉친 형태의 다발형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 rope)도 있다.
단일벽 탄소나노튜브(SWCNT)으로 구성된 ‘수평형 탄소나노튜브’는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마이크로칩 소자로 주목받았다. 반도체 성질을 띠고, 열 전도성과 물리적 강도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또 탄소나노튜브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처리 과정이 없어 소자 제작에도 효율적이다. 하지만 수직형 탄노나노튜브에 비해 만들기 어려워 연구 자체가 적었다.
탄소나노튜브의 각종 특성은 튜브의 지름과 튜브 벽이 말린 각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흑연판으로 이뤄진 벽이 말리는 각도가 뒤틀리는 성질을 ‘구조적 비대칭성(Chirality)’이라 하는데, 비대칭 정도에 따라 반도체 성질 여부 등이 결정된다. 흑연판을 어떻게 말았느냐가 탄소나노튜브 물성과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펑 딩 교수는 “기존 발표된 연구는 실험을 반복해 우연히 상용화하기 좋은 물성을 결정하는 조건을 찾는 방법”이라며 “최적화된 비대칭 구조를 찾아 탄소나노튜브를 대량으로 제작하는 기술은 개발되지 못한 실정이었다”고 연구 배경을 소개했다.
촉매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 비대칭성과 물질 특성
연구진은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할 때 쓰이는 촉매가 합성 성공률과 관련 있다는 데 주목했다. 촉매 속 탄소의 구조 비대칭성이 탄소나노튜브 합성에 영향을 준다고 본 것. 그래서 반도체 성질을 가진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할 때 촉매로 탄화텅스텐(WC)을 선택했다. 탄화텅스텐은 반도체 성질을 가지는 탄소나노튜브와 말리는 형태, 즉 구조적 비대칭성이 비슷하다.
탄화텅스텐을 촉매로 사용해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한 결과, 반도체 성질을 띠는 특정 형태의 탄소나노튜브 합성 성공률이 높아졌다. 펑 딩 교수는 “탄화텅스텐의 구조적 비대칭성이 반도체 탄소나노튜브와 유사하다는 점이 합성 성공률을 높이는 주요 변수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파이어 결정 기판 위에 반응시킬 탄화수소 기체와 촉매인 초소형 탄화텅스텐 가루를 공급해 순도 80~90% 이상의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가루 형태의 초소형 탄화텅스텐은 지름이 작고 반도체 성질을 띠는 탄소나노튜브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만들어진 탄소나노튜브 벽면에는 비대칭적 탄소 구조가 만들어져 표면 무늬가 고르지 않았는데, 그 틈새로 탄소 원자가 들어갈 수 있어 합성 속도가 빨라졌다.
펑 탄화텅스텐이 아닌 다른 촉매를 사용하면 탄소나노튜브의 물성이 바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촉매로 초소형 탄화몰리브덴(Mo₂C) 가루를 쓰자 도체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펑 딩 교수는 “이번 연구는 탄소나노튜브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연구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기존 탄소나노튜브 생산율이 저조했던 점을 극복하고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양한 물성 지닌 CNT 합성원리 규명할 것”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다양한 물성을 지닌 탄소나노튜브 합성 원리를 규명할 계획이다. 또 탄소나노튜브 합성 과정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맞춤형 고성능 탄소나노튜브’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펑 딩 교수는 2014년 텅스텐 합금을 촉매로 사용해 도체 탄소나노튜브를 제작한 바 있다. 당시에서는 도체 탄소나노튜브 제작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탄화텅스켄을 사용해 반도체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특히 이번 논문은 촉매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탄소나노튜브의 물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규명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