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예술가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쉽게 대화할 방법이 없을까? 이 질문에 이현경 기초과정부 교수가 현답을 내놓았다. 글이나 말이 아닌 ‘그림(drawing)’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그림은 전문적인 언어에 갇힌 아이디어를 꺼내 누구나 쉽게 본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현경 기초과정부 교수는 지난 2년간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Science Walden Project)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융합학문의 소통도구로서의 그림’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지난 3월 2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6회 국제 교육인문학-사회과학 학회(EHSSS-17)’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 EHSSS-17은 국제 학술 출판사인 EAP(Eminent Association of Pioneers)에서 주관한다.
사이언스 월든은 ‘똥본위화폐’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 과학자와 공학자, 예술가, 디자이너, 철학자 등이 힘을 모은 융합연구 프로젝트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10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현경 교수는 “처음 모여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는 다른 영역에서 쓰는 단어가 생소해 터놓고 대화하기가 어려웠다”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가 이해하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시작했고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팀은 요소 기술을 모두 그림으로 그려서 안내판을 만든 바 있다.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 지붕에 고인 빗물을 사용하는 순서나, 변기의 배설물이 에너지가 되는 과정까지 모두 시각적인 자료로 만들어뒀다. 이런 작업은 프로젝트 홍보뿐 아니라 실제 연구자들의 협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 교수는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에 견학 온 아이들도 그림 덕분에 쉽게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해한 부분을 다시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다”며 “그림이라는 도구가 개념을 이해할 때 얼마나 효과적인 도구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과학기술과 인문학 등 서로 다른 학문 분야가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학회 취지와도 잘 맞아 최고 논문상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원이라는 공간에서 시각디자이너로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 새롭고 보람 있다”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고, 협업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결과물을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