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그래닉(Steve Granick) 자연과학부 특훈교수(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장)가 중국 지난대학교 링샹 쟝(Lingxiang Jiang) 교수와 비디오 게임 그래픽처럼 미세 입자인 콜로이드를 조립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콜로이드를 하나씩 옮기던 기존 방법과 달리 구조의 특징을 파악해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매우 작고 정밀한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수인 콜로이드 수준의 부품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마시는 우유는 그냥 흰색 액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명한 물에 지방, 단백질, 칼슘 등의 콜로이드가 떠다니는 형태다. 콜로이드 입자는 1 나노미터(nm,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보다 크고 1마이크로미터(mm) 보다 작아 아무리 작고 예리한 핀셋이라도 잡을 수 없다.
콜로이드를 옮기려면 전용 도구인 광학 집게(Optical tweezer)가 필요하다. 광학 집게는 브라운 운동을 하는 콜로이드 입자를 레이저 광선으로 가두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전까지는 콜로이드를 옮기려면 입자 수만큼의 광학 집게를 써서 조립하는 게 최선이었다. 입자 수만큼의 광학 집게를 쓰지 않으면 구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비디오 게임의 그래픽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슈퍼마리오 같은 고전 게임과 주인공 머리카락의 흔들림까지 보이는 현대식 게임의 차이점, 그래픽 이미지 구현 방식에 주목했다. 흔히 우리가 이미지가 깨진다고 말하는 방식은 비트맵 형이다. 픽셀 하나에 색깔과 위치 정보를 저장한다. 확대하면 네모 점들이 칸칸마다 나타나는 이유다. 반면 벡터형 이미지는 확대해도 깨지지 않는다. 벡터는 최소한의 점과 점들을 잇는 함수정보가 입력되어 확대해도 경계가 매끄럽다.
벡터형 이미지의 특징에 착안해 연구진은 매끈한 평면에 콜로이드를 얇게 입혀 단일층(mono layer)을 만들고 그 위에 콜로이드를 올리는 방식을 고안했다. 따로따로 움직이는 콜로이드 입자를 고정해 안정된 형태로 재배열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기존에 필요했던 광학 집게의 5분의 1 정도만으로 충분히 콜로이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시간과 노동력을 대폭 단축한 셈이다. 연구진은 콜로이드 구조가 직선 형태일 경우, 양 끝을 광학 집게로 잡으면 구조가 유지됨을 관찰했다. 또 육각형, 삼각형 등 2차원 구조를 구현하고 각 도형의 꼭짓점만 잡아도 콜로이드 도형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콜로이드 구조의 이동과 회전뿐만 아니라 대규모 콜로이드 조립도 손쉬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닉 단장은 “이번 연구는 가사 노동에서 처음으로 세탁기가 등장한 것과 비견할 정도로 콜로이드를 조종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시했다”며 “콜로이드 입자를 정밀하게 조립․조종하는 것은 화학계의 큰 관심인 만큼 나노기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1.329)에 6월 8일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