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발사되듯 순식간에 ‘다공성 유기물 재료’를 만드는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밝혀내 주목받고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뇌관이 폭발하고, 이어서 폭약이 터지는 과정과 유사한 화학반응이다.
백종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고체 상태의 유기물 결정에 열을 가할 때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이때 ‘3차원 다공성 유기물 구조체’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자연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11월 17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3차원 다공성 물질은 표면적이 넓어 촉매의 지지체나 기체 저장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인 다공성 물질은 무기물인 제올라이트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구성이 더 좋은 유기물로 다공성 물질을 만들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주로 기체나 액체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유도해 3차원 다공성 유기물 구조체를 만드는 접근법이었다. 그런데 이 경우 후처리가 필요하고 반응결과물의 순도도 높지 않았다.
백종범 교수팀은 고체 상태의 유기물을 가열하는 간단한 공정으로 3차원 다공성 유기물 구조체를 합성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고체 상태의 유기물에 열을 가하면 쉽게 녹아버리지만, 백 교수팀에서 만든 ‘유기물 단결정(HEA)’은 열을 주면 폭발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3차원 다공성 물질로 변한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인 배서윤 박사는 “고체 상태에서는 반응을 유도하면 후처리 과정이 필요 없어 친환경적이다”며 “순도 높은 반응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기체나 액체 상태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보다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유기물 단결정(HEA)은 아세칠틸렌기가 6개가 붙어 있고, 결정구조 안에 물과 아세톤 분자가 일정량 규칙적으로 포함돼 있다. 연구진이 HEA 단결정에 열을 가하자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며 3차원 다공성 유기물 구조체로 변했다. 이때 HEA 단결정은 마치 총알(1차 뇌관 폭발에 이은 2차 주된 장약 폭발)이 발사되는 과정과 유사한 경로를 거쳐 변하게 된다.
HEA 단결정의 기본구조는 9개의 HEA 분자와 1개의 물 분자, 2개의 아세톤 분자로 이뤄진다. 이중 물과 아세톤의 끓는점이 낮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물은 100℃에서 아세톤은 56℃에서 끓기 때문에 열을 가하면, 두 분자의 운동 에너지가 커진다. 이에 따라 유기물 단결정이 녹기 전에 물과 아세톤이 외부로 방출되고(뇌관 폭발), 전체 결정의 재배열이 일어나면서 폭발적인 반응(장약 폭발)이 진행되는 것이다.
배서윤 박사는 “HEA 단결정 구조가 깨지면서 6개의 아세틸렌기가 충분히 가까워지면서 0.1초 이내에 종료되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며 “이 반응으로 합성된 3차원 다공성 유기물 구조체는 표면적이 넓어 이산화탄소 흡착제로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백종범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기물 재료를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뿐 아니라, 합성된 재료를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며 “고체 상태 반응을 이용한 새로운 재료 합성법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뿐 아니라 잠재적 응용가치도 커서 많은 분야에서 곧바로 주목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논문은 순수하게 국내 과학자들이 상호 긴밀하게 협력해 도출한 연구 성과”라며 “세계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고체 상태 합성법을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구역량을 알렸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자연과학부의 박노정 교수와 나명수 교수를 비롯해 UNIST 자연과학부의 김동욱 박사과정 연구원‧신동빈 박사과정 연구원,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자비드 마무드 박사‧전인엽 박사‧정선민 박사‧신선희 박사과정 연구원‧김석진 박사과정 연구원이 참여했다. 연구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BK21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를 통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