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표면에서 더 단단하게 달라붙는 접착제가 개발됐다. 유연하고 형상 복원이 가능한 특징도 가졌다. 물에 닿으면 접착력이 약해지거나 한 번 붙이면 다시 쓸 수 없는 기존 접착제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정훈의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팀은 새로운 방식의 ‘습식 접착제’를 개발해 ‘ACS 매크로 레터스(ACS Macro Letters)’ 12월호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은 기존 통념을 깨뜨린 연구로 평가받으며 ‘미국화학회 편집자의 선택(ACS Editor’s choice)’에도 뽑혔다. 편집자의 선택은 과학계에서 새롭고 중요한 연구를 해낸 논문을 골라 발표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무료로 공개된다.
습식 접착제는 젖은 상태에서 서로 다른 물질을 붙이는 물질이다.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체물질을 다루는 생명공학이나 의료 분야에서 꼭 필요하다. 기존에는 물속에서 단단하게 달라붙은 홍합 단백질을 모방한 접착제 개발 등이 추진돼왔는데, 이 방식은 화학처리가 필요하고 비싼데다 한 번 붙이면 되돌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정훈의 교수팀은 미세구조를 이용해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표면에 볼록하게 솟은 미세구조들이 ‘서로 맞물리면서(Interlocking)’ 달라붙도록 만든 것이다. 미세구조를 이루는 고분자인 ‘하이드로겔(Hydrogel)’은 물을 먹으면 팽창하기 때문에 습한 환경에서 접착력이 더 강해진다. 반대로 물기를 제거하면 원래 모양대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제1저자인 박현하 UNIST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 접착제는 넓적한 머리에 얇은 기둥을 가진 미세구조가 표면에 펼쳐진 얇고 유연한 필름”이라며 “두 장을 겹치면 미세구조가 맞물리면서 접착력을 가지는데, 물이 스며들면 하이드로겔이 사방으로 팽창해 더 단단하게 달라붙는다”고 설명했다.
이 접착제는 구조적인 특징을 이용하기 때문에 화학처리로 표면의 성질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또 물기만 제거하면 모양이 원래대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정훈의 교수는 “이번 기술은 기존 접착제가 가지지 못한 새로운 특징을 보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물기가 많은 환경에서 써야 하는 생명공학 분야 접착제를 비롯해 습한 환경에서 안정적이고 강력한 접착제로 광범위하게 응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일반적으로 물질 표면에 물기가 스며들면 물렁물렁해지거나 녹아버려서 접착력을 잃어버리기 쉽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이런 현상에 반대되는 새로운 구조와 재료를 제안해 과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자연모사혁신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해당 논문은 온라인 속보로 공개된 11월 16일 이후 한 달 사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은 논문 5편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