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도전하지 않은 분야, 그리고 그걸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두 가지로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연구를 개척해왔습니다. 순수하게 한국인의 힘으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기술을 개발해낸 것이라 더 기쁘고 뿌듯합니다.”
UNIST에서 ‘한국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국과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세계적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자, 석상일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특훈교수가 주인공이다.
석상일 교수는 화학과 공학의 결합으로 세계 최고 효율의 ‘할라이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제조해 에너지 분야에 학술적·산업적으로 기여한 공로로 올해 한국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은 20일(수) 오후 2시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2017년 우수과학자포상 통합시상식’에서 진행됐다.
석 교수는 학부 전공을 화학으로 시작해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융합연구의 대가다. 무기물과 유기물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분야에선 개척자로 불린다. 특히 무·유기 하이브리드 물질인 ‘페로브스카이트’로 태양전지를 만들고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업적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공학적 관점으로 문제를 찾고, 화학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찾아온 게 오늘에 이른 비결”이라며 “무기재료를 전공한데다 유기물에도 익숙하다 보니 두 물질의 장점을 융합하면서 재료 자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석 교수의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등에 다수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모두 국내 기관에 소속된 한국인들이다. 학계에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라면 한국을 떠올리게 된 배경 중 하나다. 그는 특히 올해 3월과 6월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과 안정성까지 높이는 연구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들 논문은 5,000번 이상 인용되며 관련 학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태양전지 효율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미국 신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는 석상일 교수가 4번 연속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최고 효율을 새로 쓴 기록이 남아 있다. 석 교수가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갱신하는 사이 전 세계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자의 눈이 한국으로 모였고, 관련 분야의 주도권도 우리나라가 가져왔다.
석상일 교수는 “최근에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며 “새로 창업한 ㈜프런티어에너지솔루션에서 논문 이후의 길도 꾸준히 개척해 나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하이브리드 태양전지에 처음 도전하면서 목표기간 내에 아무것도 못 이뤘던 과거가 오늘에 이르는 디딤돌이 됐다”며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만의 연구’를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길이 보일 것”이라는 말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전했다.
한편 2017년 우수과학자포상 통합시상식에서는 한국과학·공학상(4명), 젊은 과학자상(5명),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3명) 등 4개 포상에 총 18명의 우수과학자에 대한 시상이 이뤄졌다. 이 행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조무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소장 한화진)이 공동 주관했다.
석상일 교수와 일문일답
Q1. 간단한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A1. 하루아침에 이뤄낸 일들이 아니라 금방 소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너무 긴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치는데, 정리하고 나니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말뿐입니다. 지난 10년 정도 ‘하이브리드 태양전지’를 연구해왔는데 그 결실들을 최근 몇 년 사이 거두고 있습니다. ‘빅 저널(Big Journal)’이라 불리는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Nature)에 실린 4편의 논문이 대표적인데요. 100% 한국인 저자로 이뤄진 그룹이 해낸 일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가 드문 만큼 세계적으로 우리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앞으로 상용화까지 할 일이 더 많은데 이번 수상을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Q2. ‘화학과 공학의 결합’이라는 업적이 눈에 띕니다. 사연이 있을까요?
A2. 한국과학상을 받으면서 스스로 어떤 업적이 있는지 한 번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화학과 공학의 결합’, 요즘 많이 회자되는 ‘융합’이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화학과 공학을 넘나들면서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내고 있으니까요.
무기재료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특색 있는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기재료와 결합하는 방향을 생각했어요. 학부 전공이 화학이라 유기재료와도 친숙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무기물과 유기물을 결합하자,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각각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중에서 저는 ‘하이브리드 태양전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후로 10년 정도 연구를 이어오면서 전형적인 무/유기 하이브리드 재료인 ‘페로브스카이트’로 차세대 태양전지의 최고 효율을 기록하는 데까지 왔습니다.
대부분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남들과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던 것. 그리고 자신이 있었던 무기재료와 유기재료의 결합을 이용한 것. 두 가지 이유 덕분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데 앞장설 수 있었습니다.
Q3.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최고 효율은 한국에서 앞다퉈 갱신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연구방향이나 계획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A3. 최근 한국화학연구원에서 22.7%라는 효율을 발표했습니다. 함께 연구했던 후배 연구진들이 꾸준히 기술을 개발해온 덕분입니다. 이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효율뿐 아니라 안정성과 전체 시스템 등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돼야 합니다. 이 분야를 이끌어 가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일을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무기물과 유기물을 함께 이해해야 하는 융합학문이라 다양한 것들이 만족돼야 결과가 나오는데요. 앞으로도 부지런히 연구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프런티어에너지솔루션이라는 기업을 창업한 것도 고효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제조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연구실에서도, 기업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맞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Q4. 한국 과학기술계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4. 9년 동안 ‘하이브리드 태양전지’를 주제로 진행했던 ‘글로벌연구실사업’의 경험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가장 큰 은인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큰 성과가 없었던 1단계 3년입니다. 당시 저는 3년 후에 해내겠다는 목표를 상당히 높게 제안했는데요. 3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아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땐 정말 한계에 다다른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구하다 보니 돌파구가 보이더니 한순간에 ‘퀀텀점프(Quantum Jump)’했습니다. 한계를 넘어서자 한 차원을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 한계에 다다른 경험이 사람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넓은 눈으로 보면 연구도 ‘가게 차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위치’와 ‘종목’이겠죠. 어디에 문을 열어서 무엇을 팔아야 장사가 잘 될지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에서도 어떤 분야에서 무슨 주제로 연구할지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위치가 조금 나빠도 종목을 잘 골라서 크게 성공하는 가게가 있듯 연구에서도 ‘나만의 연구’, ‘독특한 기술’을 개척하면 세계 최초, 혹은 최고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 있는 분야를 잘 선택해 꾸준히 연구해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