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착한 박테리아, ‘벨로(BALO, Bdellovibrio And Like Organisms)’의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의 원인으로 지적된 세균감염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는 것이다.
UNIST 생명과학부의 로버트 미첼(Robert J. Mitchell) 교수팀은 최근 연구를 통해 병원균을 잡아먹는 박테리아, 벨로의 활동을 막는 병원균의 작용을 밝혔다. 동시에 비타민을 이용해 이 병원균의 방해효과를 없애는 방법도 제시했다. 연구진을 이를 통해 슈퍼박테리아에 대항할 벨로의 활용범위를 넓혔다.
벨로는 병원성 박테리아를 내부에서부터 공격하는 델로비브리오와 그와 유사한 박테리아들을 일컫는다. 인체에 무해하며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병원균을 잡아먹는 착한 박테리아인 벨로는 차세대 감염병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벨로는 그람음성균의 대부분을 먹어치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람음성균은 면역력이 약한 중증환자나 미숙아에게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으로, 살모넬라균, 이질균, 폐렴균, 콜레라균 등이 이에 속한다.
문제는 이중 벨로에 저항하는 균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구진들은 ‘병원균들이 어떻게 벨로를 저지하는가’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왔다.
이번 연구에서는 병원균 ‘크로모박테륨 피시내(Chromobacterium piscinae)’가 강력한 벨로 중 하나인, ‘델로비브리오 박테리오보루스 HD100(Bdellovibrio bacteriovorus HD100)’의 작용을 막기 위해 시안화물(청산가리)을 생성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병원균은 영양성분이 풍부한 특정 조건에서 시안화물을 생성했다. 스스로 시안화물 해독능력을 갖춘 병원균은 이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포식 박테리아의 작용을 막는 모습을 보였다.
제1저자인 문원식, 권희운 학생은 “병원균이 영양 조건에 따라 포식 박테리아에 저항성을 보이는 현상에 주목해 그 억제 작용을 밝혀내는데 집중했다”며 “이번 연구는 박테리아의 포식 및 억제효과가 일어나는 실제 조건에 맞는 관찰과 분석의 중요함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시안화물이 억제작용을 한다는 것을 확인한데 이어, 이 경우 비타민제(Vitamin B12a)를 투여하면 해독 효과가 발생해 벨로가 활성화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벨로는 시안화물에 의한 방어기작을 회피하여 병원균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미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특정 조건 하에서 작동하는 방어기작을 발견하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며 “세균이 어떻게 치료에 저항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적용 환경 하에서의 세균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도 벨로의 작용을 막는 기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벨로를 인체에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슈퍼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차세대 치료법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국제저널 엠바이오(mBio)에 게재된 이번 연구는 미국미생물학회(ASM,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에서 별도 기사를 통해 다루는 등 흥미로운 연구로 주목받았다.
한편 이번 연구는 미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이하 DARPA)’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미첼 교수 공동연구팀은 지난 2015년, DARPA의 ‘병원균 포식미생물 프로그램(The Pathogen Predators program)’에 선정돼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