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영화의 제목 중 90%는 오역입니다. 단어 이해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잘못된 번역 때문에 영화 내용과 전혀 다른 제목이 달리는 거예요. 이건 관객들이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게 만들거나, 나아가서는 영화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어요.”
김욱동 기초과정부 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한 외화 제목을 분석한 논문을 국제학술지 ‘르뷔 바벨(Revue Babel)’에 발표했다. 르뷔 바벨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번역가협회(FIT)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다.
‘외국영화의 한국어 제목 오역((Mis)translation of foreign film titles in Korea)’라는 제목의 이번 논문에서는 잘못된 번역을 4가지 종류로 구분해 분석했다.
첫 번째 오역 사례는 다의어(words with multiple meanings)를 잘못 이해한 경우다. 철자는 같지만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나 동철이의어, 혹은 하나의 단어가 여러 뜻을 품고 있는 단어를 잘못 해석하면서 실수가 생기는 것이다. 김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영화 제목은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다.
김 교수는 “영어에서 ‘소사이어티(Society)’는 사회라는 뜻 외에 ‘동아리’나 ‘모임’ 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며 “원래 제목은 ‘고등학생 교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이며 ”죽은 시인을 연구하는 동아리’ 혹은 ‘죽은 시인 연구회’ 정도로 번역해야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1984년 작품인 ‘애정의 조건'(Terms of Endearment)도 ‘텀(Terms)’이 가진 조건·조항·기간 등의 다양한 의미 중에서 잘못된 의미를 골른 경우다. 영화 내용에서는 모녀의 사랑이 조금씩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나타낸 제목으로는 ‘애정의 시간’이 더 올바르다는 것. 실제로 일본에서 번역한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랑과 추억의 나날’이다.
영어의 속어나 구어 표현을 제대로 몰라서 번역 오류가 발생하는 게 두 번째 오역 사례다. 말론 브랜도가 연출·주연한 1962년 작 ‘애꾸눈 잭(One-Eyed Jacks)’이 대표적이다. 서양에서 ‘한쪽 눈을 한 잭(One-Eyed Jacks)은 포커 중 11번패를 뜻한다. 이 카드가 포커 게임 중 자주 와일드카드로 사용되면서 구어 표현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모른 채 글자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김 교수는 “실제 영화 속에서 애꾸눈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아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며 “‘한쪽 눈을 한 잭(One-Eyed Jacks)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므로 ‘무소불위의 사나이’ 또는 ‘만능의 사나이’ 정도로 번역했어야 한다”고 전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도 오역 사례로 꼽혔다. 이 작품의 제목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실하는 그 무엇(Translation is what gets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유명한 말에서 따왔다.
번역의 불가능성이나 문화 이해의 어려움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번역에서 길 잃어’ 정도가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해도 오역이 발생한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소행성에 홀로 사는 어린 주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따라서 왕자가 아니라 ‘어린 군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실제로 ‘프린스(prince)’라는 단어는 공국이나 후국, 소국의 우두머리, 즉 군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왕 마고(Queen Margot)’는 ‘마고 왕비’가 맞다. ‘퀸(queen)’은 여왕보다 왕비로 더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번역 오류는 고유명사를 일반명사로 오해한 경우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은 영화 속에서 한 소년이 고민을 상담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다. 따라서 영화 내용을 더 포괄하려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소년’ 정도가 더 어울린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늑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Wolves)’도 주인공 인디언의 이름인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서 ‘춤’이나 ‘늑대’를 주제로 한 내용을 떠올리게 만들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 외화 수입사들이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임의로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제를 발음이 나는 대로 옮기는 음역이 늘고 있다. 우리말로 해석해 옮길 경우 원작과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부분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김욱동 교수는 국내에서 영미문학 번역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앵무새 죽이기’ ‘그리스인 조르바’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등 30권이 넘는 영미문학을 번역했다. 서강대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최근에는 UNIST 기초과정부 초빙교수로 옮겨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함께 강의할 수 있다는 게 무척 기쁘다”며 “학생들의 시선이 순수해서 즐겁고, 자연 속에 있는 캠퍼스를 누릴 수 있어 좋다”고 UNIST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