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체 물질에 진동을 유발해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적외선을 쏘아, 원자를 춤추게 만들어서, 전자의 ‘스핀(spin)’을 정돈하는 게 핵심이다. 전자의 자기적 성질을 전자공학에 이용하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에 기여할 전망이다.
박노정 자연과학부 교수팀은 자기적 성질을 띠지 않는 물질로부터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자석으로 만드는 방법을 최신 계산방법으로 증명했다. 적외선으로 ‘포논(phonon)’을 생성해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다. 포논은 고체 속을 흐르는 진동(소리)의 입자로, 포논이 생기면 원자가 춤추듯 진동한다.
박노정 교수는 “모든 물질은 스핀이라는 ‘자석의 씨앗’을 가지며, 스핀 방향을 나란히 정렬하면 자성을 띠게 할 수 있다”며 “자기장이나 빛으로 직접 스핀을 조절하는 연구도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원자를 춤추게 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자의 스핀 방향을 정렬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철을 자석으로 만들려면 강한 자석을 가까이 붙이면 된다. 이때 생성된 자기장이 전자의 스핀 방향을 나란하게 정렬시키기 때문이다. 물리학적 관점에서는 자기장이 존재하면 물질계의 ‘시간 대칭’을 깨트려서 전자의 스핀을 한 방향으로 정돈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야구공이 날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가 있다면, 그것을 거꾸로 돌려도 이상하게 느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며 “이것은 야구공의 운동이 시간대칭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시간대칭성의 예를 들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자기장이 있는 공간에서는 시간대칭성이 없어서, 전자의 움직임을 촬영한 비디오를 거꾸로 돌린다면 존재할 수 없는 궤적이 나오게 된다”며 “이러한 시간대칭성이 깨진 상황 중의 하나가 스핀들이 한 방향으로 정돈되는 것, 즉 자석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차원 반도체 물질인 ‘몰리브덴황(MoS₂)’을 자석으로 만드는 데 적외선을 적용했다. 적외선의 영향으로 ‘황 원자는 한 방향으로 회전운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시간 대칭이 깨진다. 이는 결국 전자의 스핀 방향을 정렬시켜 몰리브덴황이 자성을 띠게 만든다. 다시 말해,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원자가 자기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로 적외선처럼 에너지가 낮은 파장의 빛으로 전자의 스핀을 조절할 가능성이 입증됐다. 이는 전자의 스핀 방향만 조절해 신호로 이용하는 전자공학, 스핀트로닉스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전자의 스핀으로 신호를 만들면, 전자를 직접 이동시키는 것보다 연산속도가 빠르고 저장용량이 크며 에너지 소비도 적은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스핀트로닉스를 구현하는 물리학적인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진호섭 자연과학부 교수와 신동빈 물리학과 대학원생도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2월 12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