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는 우주 어디나 있는 풍부한 자원이다.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면 물만 배출하는 무공해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소를 저장해두고 사용하기는 어렵다. 수소가 영하 253℃부터는 기체가 되는데다 어떤 원소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백종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세 방향으로 성장시킨 ‘초미세 유기구조체(3D-CON)’를 개발해 수소를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물질은 가볍고 튼튼하면서 수분 등에도 안정적인 유기고분자를 이용한데다, 수소 저장 성능도 우수해 주목받고 있다.
백종범 교수는 “수소는 너무 가벼워 어떤 소재로 탱크를 만들어도 빠져나는데, 이를 막으려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듯 다른 물질을 써서 수소를 붙잡아야 한다”며 “오랫동안 다양한 물질이 제안됐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유기 물질이 유리하며, 특히 이번 물질은 수소 흡착 능력도 최고 수준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팀은 방파제로 쓰이는 테트라포트 모양의 분자(THA)와 육각형 고리 모양의 분자(HKH)를 반응시켜 ‘3D-CON(cage-like organic network)’이라는 유기구조체를 얻었다. 두 분자가 반응을 시작하면 THA에 HKH가 달라붙으면서 세 방향으로 성장한다. 이 반응이 반복되면서 새장(cage)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유기구조체가 형성된다.
이 물질은 아주 미세한 기공을 잔뜩 가져 수소나 메탄,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를 흡착하는 성능이 탁월하다. 기존 3차원 유기구조체와 달리 분자들이 육각형 사다리 모양으로 결합돼 있어 구조적으로도 안정하다. 또 수분에 반응하지 않는데다 600℃의 고온에서도 견디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도 높다.
연구진은 3D-CON으로 수소를 비롯한 기체 흡착 실험을 진행했다. 일반 기압(1bar)에서 영하 196℃(77K) 온도 조건을 줬을 때, 3D-CON의 수소 저장 성능은 2.6wt%였다. 이 물질 1g에 수소 0.026g을 저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압력을 더 높이자(59bar), 미국 에너지부(DOE)에서 2020년 목표로 지정한 수소 저장 성능인 5.5wt%를 넘어섰다.
기체 흡착 실험을 진행한 김석진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지금까지 보고된 유기 다공성 물질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성능 수치”라며 “고압 흡착 실험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도 똑같이 진행해 성능인증서를 획득했다”고 말했다.
이 물질은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저장 성능도 뛰어났다. 일반 기압(1bar) 아래 0℃(273K) 온도에서 1g 당 메탄 0.024g, 이산화탄소는 0.267g을 각각 저장할 수 있다.
이 물질의 합성을 담당한 자비드 마흐무드(Javeed Mahmood)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연구교수는 “두 분자가 합성되면서 만든 빈 공간에 기체들이 안정하게 흡착되는 구조”라며 “특히 질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부분이 기체의 흡·탈착에 아주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백종범 교수는 “기체 저장 물질은 수소자동차와 가스 센서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미래 에너지 소재로 유기구조체를 응용할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우리 기술로 세계 기술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태양전지나 배터리 같은 에너지 소재는 공증기관이 따로 있어 기술 진보에 기여하고 있다”며 “아직 공증기관이 따로 없는 기체 흡착 분야에서도 이런 기준을 만들어 신뢰도 있는 분야로 이끌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화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발표됐다. 연구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BK21플러스사업, 우수과학연구센터(SRC) 및 기후변화사업을 통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