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 타타르(Bradley Tatar) 기초과정부 교수는 미국 휴스턴 출신으로, 뉴욕주립대(SUNY)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논문은 코스타리카의 커피농장에 관한 것이었다. 인류, 사회, 정치학 및 환경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그는 대학원에서 아내 최진숙 UNIST 기초과정부 교수를 만나면서부터 한국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국에서 기회를 찾아보는게 어떻겠냐는 최진숙 교수의 제안을 시작으로 타타르 교수와 한국의 끈끈한 인연이 시작됐다. 타타르 교수는 처음 한국에 와서 가톨릭대와 카이스트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2010년 최 교수를 따라 울산으로 오게 됐다. UNIST가 인문사회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던 시기에 좋은 인연으로 닿았다.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사회를 둘러싼 새로운 현상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대학원에서는 주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정치적 변화와 갈등에 대해 연구했다. 한국에 오면서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를 구상했다. 울산에서 만난 고래에 대한 이슈는 단번에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고래와 관련된 이슈는 환경이나 동물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주제”라며 “울산에서의 고래와 관련된 인류학적, 사회학적, 정치학적 접근을 해본다면 의미 있는 연구들이 탄생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고래고기 관련 소비자 연구를 진행한 타타르 교수를 만나 울산과 고래에 대한 그의 연구에 대해 물었다.
Q1. 울산에서 고래를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 울산에 왔을 때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울산의 어떤 점이 재밌을지, 제가 연구할 주제가 무엇일지 찾아봤죠. 그러던 중 장생포에 방문하게 됐고, 고래박물관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나오자 수많은 고래고기 식당을 보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울산에서 고래고기를 먹는 문화에 대해서요.
고래고기에 대해 궁금한 부분을 고래연구소의 연구원에게 물어봤고, 그때부터 ‘울산의 고래’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수업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학생들에게 고래축제에 참가하도록 독려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방면으로 울산의 고래 문화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설문조사에 대한 의견도 이 과정에서 얻었는데요. 이후 설문조사 분석에 강점을 가진 정창국 UNIST 기초과정부 교수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Q2. 고래 연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나요? 특히 울산에서 진행하는 고래 연구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고래 연구는 ‘인간-동물 간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둘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해왔습니다. 과거 인간에게 동물은 사물 또는 가축에 지나지 않던 시기가 있습니다. 동물이 단순한 소유물이거나 물품을 생산하는 도구 정도로 여겨진 겁니다. 하지만 최근엔 동물복지에 대한 개념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동물’, ‘존중해야 할 생명으로서 동물’에 대한 인식이 성장한 것입니다.
이는 사회 변화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환경이나 인간, 동물의 개념도 지속적으로 달라지고 다양한 관계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시대에 따른 인식과 제도의 변화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래에 관한 여론, 제도 등의 변하는 과정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과학적 포경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 과정이나, 돌고래 수입금지 조치에 따라 나타나는 갈등을 살피고 어떤 영향으로 이어질지 분석해보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고래는 여러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고래가 국제적으로 환경보호에 대한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울산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고래를 보호하기도 해야겠고, 고래고기를 먹는 문화도 존중해야 하니까요. 점차 인간과 환경의 공존이 강조되고,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 해양 보전 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고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래의 도시’이자 ‘고래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울산은 이 연구를 진행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Q3. 고래마을 장생포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생포는 늘 새롭게 성장하는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장생포의 공간적 특성에 대한 논문을 따로 쓰기도 했습니다.(Place-making, Landscape and Materialities: Whales and Social Practices in Ulsan, Korea. 한국문화인류학(2017.7)). 장생포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공간입니다. 제가 처음 울산에 왔을 때에 비하면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생태체험관, 고래탐사여행선, 장생포 옛 마을 조성 등의 사업을 통해 고래에 관한 문화를 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생포 옛 마을 조성은 포경문화와 현대 장승포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과거 역사적 사건과 그 의미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장생포를 새로운 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죠. 또 장생포에 세워진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Roy Chapman Andrews)의 동상’도 뜻 깊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로 회자되는 그가 울산에 와서 ‘귀신고래’의 뼈를 수집했던 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장생포와의 독특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덩치가 큰 귀신고래는 등에 미생물이 많이 자라는 종인데요. 수심이 얕고 등을 긁을 수 있는 해안이 있는 환경을 좋아합니다. 이런 환경이 장생포에 갖춰져 있죠. 앤드류스는 1910년대 울산에서 고래를 탐사하고 발견한 귀신고래에게 ‘회색고래(Korean Gray Whales)’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이밖에도 귀신고래에 여러 이름들이 붙여졌는데, 이것들이 울산과 고래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Q4. 고래고기에 대한 다음 연구 계획도 갖고 계신가요?
최근 기획 중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고래고기 문화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주로 울산의 고래고기 소비를 다뤘는데요. 이건 울산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전체에서 고래고기 소비는 울산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울산 등 동남권 지역을 벗어나면 고래고기 소비는 활발하지 않은 편입니다. 한편 일본의 경우엔 전 지역에서 고래고기 소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비교연구를 통해 고래고기 소비를 분석하고 인식 차이도 살펴보는 게 목표입니다.
Q5. 이번에는 울산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느끼신 울산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울산은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과거부터 고래에 대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포경도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근현대 최전성기를 누린 ‘공업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문화적으로 특별합니다. 지역적이고, 향토적인 요소가 많다는 건 저 같은 인류학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울산은 서울이나 대전에서 마주했던 딱딱한 도시의 인상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재밌습니다. 이런 다양한 면이 여러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Q6. 향후 울산에 대한 다른 연구계획이 있나요?
반구대암각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울산과 반구대암각화가 맺고 있는 관계, 그 의미에 대해 재해석을 해보고 싶습니다. 선사시대 누군가 새겨 놓은 암각화는 여러 의미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는 고래사냥과 주술적 의미를 넘어 현대적 의미로 반구대암각화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일례로 반구대 암각화는 버스 정류장 등 울산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첨단도시인 울산에 선사시대의 상징이 쓰인다는 건 재밌는 현상입니다. 지금 울산에 새겨진 암각화는 과거의 것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울산과 반구대암각화가 어떤 의미로 연결돼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Q7.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 인류학 강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인류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생각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식과 답을 찾는 데 익숙한 이공계 학생들에게 답이 정해지지 않는 여러 생각들을 마주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학생들이 ‘실험실 안에서의 나’, ‘회사 안에서의 나’를 넘어선 새로운 자신을 찾고 넓은 시야를 가지도록 돕고자 합니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고래축제에 참가해 참여관찰을 하는 과제를 준 적이 있습니다. 축제에 대한 학생들의 감상은 비슷했는데요. 한 학생이 축제에 참가한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고래와 축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래 그거야”라고 외쳤죠. 그 학생처럼 나의 관점과 상대의 관점, 그리고 제3자의 관점을 배우고 익히는 것, 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이 인류학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별세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존경받았던 것은 그의 훌륭한 연구만큼, 그가 그 연구들을 사회와 인간에게 연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그와 같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