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보싱 화장지처럼 올록볼록한 ‘그래핀 버블(graphene bubble)’이 꿈의 나노물질로 떠올랐다. 평평한 그래핀보다 화학적 반응성이 높아져 새로운 성질을 가질 수 있는 원리가 밝혀진 덕분이다.
로드니 루오프(Rodney S. Ruoff) 자연과학부 특훈교수(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장)가 주도하고 펑 딩(Feng Ding) 신소재공학부 특훈교수(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 그룹리더)가 참여한 연구진이 이 볼록하게 돌출된 그래핀 버블을 제작해 평면 그래핀보다 화학적 반응성이 높다는 걸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라만 분광법(Raman Spectroscopy)을 활용한 이번 연구는 잠재적 활용가치가 높지만 제작하기 어려웠던 그래핀 버블의 응용처를 찾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루오프 교수팀은 흑연에서 떼어낸 고품질 그래핀으로 연구에 적합한 크기와 높이를 가지는 그래핀 버블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기판 위에 그래핀 박막을 올린 뒤 가열하자 기판 표면에 흡착됐던 불순물 분자들이 기화돼 그래핀 안에 갇히면서 그래핀 일부분이 볼록하게 솟아오른 것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들어진 그래핀 버블의 분자 구조를 라만 분광법으로 측정했다. 참고로 이 분광법은 분자에 쪼여준 빛이 산란돼 방출될 때 빛 일부가 물질의 진동에너지만큼 광자(photon)를 방출해 에너지를 잃게 되는 라만 현상(Raman Effect)를 이용해 분자 구조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라만 분광법의 측정 결과, 평평하던 그래핀이 볼롯 솟아오르면서 굴곡이 나타나자 탄소 원자 사이에 거리가 늘어나고 장력(tension)이 생겼다. 이때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력이 약해졌고, 화학적 반응성이 높아졌다.
루오프 교수는 “마치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면 양 끝단의 거리가 늘어나고 팽팽해지다 결국 끊어지는 것과 비슷안 원리”라면서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이 약해지지 깨문에 외부 요소에 의한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또 그래핀 버블의 일부만 가열하고, 라만 분광법으로 측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해당 위치의 온도를 계산해냈다. 이를 이용해 그래핀 버블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열이 확산되는 속도를 측정해 그래핀 고유의 특성인 ‘높인 열전도성’을 확인했다.
펑 딩 교수는 “이번 연구 전까지 그래핀 버블의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으며, 열전도 측정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그래핀 버블의 온도값 계산뿐 아니라 레이저를 쏘면 그래핀 버블의 온도가 높아지는 점에 착안해 그래핀 퍼블의 온도를 제어하는 방법도 알아냈다“고 밝혔다.
그래핀 버블 위에 레이저 빛을 쏘면 입사광과 반사광이 겹치면서 정상파(standing wave)가 형성된다. 정상파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서 제자리에서 진동하는 파동을 뜻하는데, 이 정상파가 그래핀 중심에서 최대치가 돼 온도가 가장 높아졌다. 반대로 그래핀 버블의 가장자리에 가까울수록 정상파 형성이 어려워 온도가 낮아진다. 또 레이저 빛의 강도에 따라 온도 변화 폭이 결정되는 것도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루오프 교수는 “이번 연구는 라만 분광법으로 쉽게 그래핀의 열전도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을 뿐 아니라 온도 조절을 통해 그래핀 버블의 반응에서 반응을 유도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며 “그래핀 버블의 물리적 성질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응용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의 의미를 짚었다.
그는 이어 “그래핀 버블 안에 특정 가스를 채워 레이저 빛을 쏘면 온도를 높이면 내부에서만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초소형 반응기가 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암모니아 가스를 넣어 반응을 유도하면 질소 도핑 그래핀을 만들 수 있다”며 “그래핀 버블 부분만 온도를 계속 높여 파열되도록 유도하면 특정 분자만 걸러낼 수 있는 분자체(molecular seive)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사례를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물리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5월 3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한편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으로 격자를 이뤄 벌집 모양으로 펼쳐지는 2차원 물질이다. 육각형 벌집 격자 꼭짓점에 각각 탄소 원자가 위치하게 되는데, 두께는 0.2㎚(1㎚=10억분의 1m)에 불과하다. 철보다 200배 강하고, 잘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유연하며, 구리보다 10배 전기가 잘 통하고,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속도가 100배 빨라 ‘꿈의 신소재’로 불려 왔다.
그래핀 격자 구조에 변화를 주면 탄소 원자들의 반응성이 달라지는데, 이때 새로운 물성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변형 과정이 복잡한데다 공정 중에 그래핀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시도는 많지 않았다. 결국 그래핀 활용 분야에 대한 연구도 주로 평면 그래핀의 성질을 중심으로 연구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