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실리콘’ 소재는 깨지지 않고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작동시켰다. 충전 시 크게 부풀고, 심지어 부서지던 실리콘의 단점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각광받는 실리콘의 활용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됐다.
박수진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미국 북태평양국가연구소(PNNL), 펜실베이니아주립대와 공동으로 리튬 이차전지용 실리콘 소재의 수명을 향상시킬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만든 실리콘 음극 소재의 충‧방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물결 모양의 주름 구조가 안정성을 높이는 원리도 규명했다.
우리가 쓰는 리튬 이차전지는 음극 소재로 ‘흑연’을 사용한다. 그런데 전기차 등에서 고용량 배터리 수요가 늘자 ‘실리콘’이 주목받고 있다. 이론적으로 실리콘은 흑연보다 약 10배 이상 용량이 크고 작동 전압도 낮아, 고에너지 배터리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콘을 충전하면 약 3배 이상 부피가 팽창하면서 깨지거나 잘게 부서져 배터리 성능을 저하시켰다.
기존 해결책은 음극 내부에 실리콘이 팽창할 만큼의 여유 공간을 만들거나, 실리콘을 단단한 물질로 둘러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제조과정이 복잡한데다 실리콘의 고용량 특성도 보장하지 못했다. 이에 박수진 교수팀은 간단하고 값싼 방법으로 ‘깨지지 않는 대면적 이차원 실리콘’을 개발하고 성능 향상 원리를 규명했다.
연구진은 실리콘 나노시트(Silicon nanosheet)를 대면적으로 합성하고, 탄소층을 얇게 코팅해 ‘대면적 이차원 실리콘’을 만들었다.
탄소는 실리콘과 달리 충전해도 10% 미만으로 팽창한다. 따라서 탄소층은 내부 실리콘의 부피팽창을 억제할 수 있다. 실제로 이차원 실리콘 소재를 충전하자, 수평 방향으로는 조금만 부풀고 수직 방향으로 더 많이 팽창했다. 하지만 방전할 때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게 실리콘이 수축돼, 물결치는 모양의 주름 구조로 변형됐다.
제1저자인 류재건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박사는 “일반적인 실리콘는 부풀고 줄어드는 과정에서 충격이 쌓여 쉽게 깨진다”며 “주름은 이런 충격을 흡수해 안정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주름 구조를 가진 새로운 실리콘을 음극 소재로 쓴 배터리는 충‧방전해도 터지거나 깨지지 않았다.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in situ TEM)으로 충‧방전 과정을 관찰한 결과, 주름 구조가 내부에 쌓인 힘을 손쉽게 방출시켜 안정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게 입증됐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도 같은 해석을 얻었다.
류재건 박사는 “실시간 이미징으로 물결치듯 주름진 구조가 실리콘 소재의 회복력을 부여한다는 걸 최초로 입증한 연구”라며 “새로운 실리콘 소재를 쓰면 팽창할 공간을 따로 확보하지 않아도 배터리의 초기 충‧방전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교수는 “이 기술은 실리콘의 부피 팽창을 무조건 억제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활용해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높인 새로운 시도”라며 “게르마늄(Ge)이나 주석(Sn) 등 부피팽창률이 큰 다양한 배터리 소재에 적용할 수 있고, 플렉시블 이차전지 분야에도 새로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BK21플러스 사업’과 LG연암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연구 내용은 세계적 권위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7월 26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