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그래닉(Steve Granick) 자연과학부 특훈교수(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장)팀이 중수(D₂O)를 이용한 투과전자현미경 기술로 긴 시간 동안 생체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중수는 중수소 2개와 산소 1개로 이뤄진 물이다. 일반적인 수소가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이뤄진 것과 달리, 중수소는 중성자 1개가 더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중수 분자 하나는 물분자보다 중성자 2개만큼 더 무겁지만 성질은 물과 비슷하다. 현재 중수는 상업적으로 구매가 용이하고 별다른 처리과정이 필요 없어 많은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중수를 넣은 그래핀 주머니’를 이용해 생체물질의 손상을 늦췄다. 그 결과, 연구적으로 유의미한 전자현미경 관찰 시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몸은 대부분 액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생체분자를 제대로 관찰하려면, 용액 내에서 생체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스티브 그래닉 교수팀은 이전 연구에서 액체가 든 얇은 그래핀 주머니를 고안해 전자현미경 사용 시 발생하는 시료 건조 문제를 해결하며 무염색 고분자의 실시간 움직임을 관찰한 바 있다. (바로가기)
하지만 그래핀 주머니 안에 있는 물 역시 빠른 속도의 전자와 만나면 수소와 과산화수소 등으로 분해된다. 액체 환경이 무너지면서 시료인 생체 고분자가 손상되고, 그래핀 주머니 안에 공기 방울이 생긴다. 기존에는 물에 글리세롤 등 다른 물질을 섞어 전자빔의 영향을 줄여왔지만, 관찰 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연구진은 일반 물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 신체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전자와 상호작용 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중수’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중수와 물에서 고분자가 손상되지 않고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중수 안의 고분자가 2배 가량 더 오래 관찰돼 시료 손상이 훨씬 늦게 나타나는 게 확인됐다. 또 중수 안 고분자는 그래핀 바닥과 흡착-탈착 과정 및 점프 현상을 나타내며 실제 물 속에 있는 분자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연구진은 중수가 든 그래핀 주머니가 다른 용액을 넣은 주머니에 비해 얼마나 오래 액체환경을 유지하는지 측정했다. 다른 용액 주머니가 일정시간 전자빔에 노출됐을 때, 최대 150초 가량 후 공기방울이 주머니에 가득 찼다. 중수가 든 그래핀 주머니에서는 이 시간이 200초 이상까지 늘어났다.
공동 제1저자인 후안 왕 IBS 연구위원은 “우리는 전자현미경에서 고분자 시료가 손상되는 문제를 근본적인 단계에서 진전시켰으며, 이 기술은 향후 큰 생체물질을 보는 데 응용할 수 있다”며 “특히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저온전자현미경에서도 중수를 이용하면 기존보다 관찰시간이 더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그래닉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액체-투과전자현미경 분야에서 중수를 이용한 첫 사례”라며 “액체-투과전자현미경 분야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시료 손상 문제를 개선하며 생체분자의 작동원리를 실시간으로 영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에는 권오훈 자연과학부 교수와 김예진 자연과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이 함께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재료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에이씨에스 나노(ACS Nano) 7월 18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