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비롯한 중대형 기기에는 대용량 배터리가 필요하다. 이를 구현할 차세대 음극물질로 ‘실리콘’이 꼽히는데, 고온에서 합성해야 해 비싸고 대량생산도 어려웠다. 이 문제를 ‘촉매’로 해결한 기술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곽상규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곽상규 교수팀은 박수진 POSTECH 화학과교수팀, 미국 북태평양 국가연구소(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 PNNL)과 공동으로 저온에서 실리콘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원자 단위의 시뮬레이션으로 합성 원리를 규명했다. 이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출판그룹인 네이처 퍼블리싱 그룹(Nature Publishing Group)에서 발행하는 ‘커뮤니케이션스 케미스트리(Communications Chemistry)’ 8월 6일자에 게재됐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음극 물질로는 흑연이 사용된다. 그런데 전기차처럼 대용량 배터리의 수요가 늘면서 흑연보다 용량이 큰 실리콘이 대체 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10배 이상 용량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다양한 합성법을 통해 실리콘이 생산되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금속을 이용한 실리카(Silica)의 환원’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수백 ℃ 이상의 높은 온도가 필요해 비싸고 실리콘의 대량 합성도 어려웠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 문제를 ‘금속할로젠화물 촉매’를 이용해 해결했다. 실리콘과 금속의 화학 반응에 금속할로젠화물 촉매를 도입해 실리콘 합성 온도를 낮춘 것이다.
특히 곽상규 교수팀은 이 현상을 원자 단위 시뮬레이션 과정으로 분석해 저온 합성 과정의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금속할로젠화물 촉매가 도입되면서 금속과 실리카가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가 낮아져 실리콘이 쉽게 합성된 것이다.
제1저자인 김진철 UNIST 화학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금속할로젠화물은 녹는점이 낮아 실리카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 반응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며 “또 금속할로젠화물이 환원 반응에 직접 참여해 실리콘 생성 속도를 촉진시킨다”고 설명했다.
공동 제1저자인 UNIST 에너지공학과의 송규진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원자 단위의 메커니즘에서 규명했듯 실제 실리콘의 합성이 낮은 온도에서 이뤄진다는 게 확인됐다”며 “이는 실리콘 음극 소재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저온 합성법으로 만들어진 실리콘 음극 소재로 배터리를 만들고, 충‧방전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백 회 이상의 충‧방전을 반복해도 안정적인 전기화학적 특성을 보였다.
▲ 저온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실리콘 음극 소재를 배터리에 적용해 실리간으로 관찰한 장면
또 다른 공동 제1저자인 류재건 UNIST 에너지공학과 박사는 “실시간 투과전자현미경(in situ TEM)을 통해 충‧방전 과정 동안 저온 합성된 실리콘의 구조적 안정성을 증명했다”며 “이를 통해 차세대 음극 소재로 저온 합성 실리콘이 적합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곽상규 교수는 “금속할로젠화물을 이용한 합성법의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낮은 온도에서 실리콘을 형성하는 방향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박수진 교수는 “금속할로젠화물은 금속이 녹는 용융을 촉진할 뿐 아니라 시작하도록 돕고, 결과물로 제작되는 실리콘의 구조 형성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실리콘뿐 아니라 다른 금속산화물에도 충분히 금속할로젠화물을 촉매로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미래선도형 특성화사업(UNIST)과 LG화학의 지원, UNIST 슈퍼컴퓨팅 센터의 계산 자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