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나 계면활성제 같은 화학물질은 수많은 분자들이 뭉쳐진 고분자로 만든다. 이런 고분자를 만드는 데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광촉매의 ‘레시피(Recipe)’가 개발돼 화제다. 여기서 주어진 순서대로 따라하면 누구나 원하는 촉매를 만들 수 있다. 향후 컴퓨터를 통한 광촉매 설계도 가능할 전망이다.
권민상 신소재공학부 교수팀은 ‘합리적인 유기물 광촉매 설계 원리(유기물 광촉매 플랫폼 포함)’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원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순서도처럼 한 장의 안내도로 정리됐는데, 순서를 따라가면 이론적으로 무한개의 유기물 광촉매를 개발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30여 종에 이르는 유기물 광촉매를 개발하고,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현재 고분자 합성에 많이 이용하는 ‘원자 이동 라디칼 중합(Atom Transfer Radical Polymerization, ATRP)’은 금속촉매를 쓴다. 이 기술은 합성 후 금속을 제거하는 공정이 필요해 비싸고, 금속을 완전히 제거하기도 어려워 전자나 생물의학 분야로 응용되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물 광촉매를 쓰는 ‘유기물 광 산화‧환원 촉매 기반 원자 이동 라디칼 중합(Organocatalyzed Photoredox-Mediated ATRP, O-ATRP)’이 개발됐다. 하지만 이 기술 역시 다량의 촉매가 필요하고, 착색이나 생체독성 등이 나타나는 문제가 있었다.
권민상 교수는 “금속촉매를 안 쓰는 O-ATRP가 자리 잡으려면 더 좋은 유기물 광촉매가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연구가 부족했다”며 “이번 연구로 유기물 광촉매를 만드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적절한 순서도를 제공해, 목표 고분자에 꼭 맞는 ‘반응맞춤형 광촉매’를 설계할 방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고분자 합성에는 기본적으로 단량체(monomer)가 필요하다. 단량체의 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유기물 광촉매의 성질(예를 들어 광흡수파장, 산화‧환원 에너지 등)이 달라진다. 권 교수팀은 이 내용들을 종합해 설계 순서도(그림2)를 만들었다. 원하는 고분자 반응을 정의한 다음, 이 순서도에 따라 촉매를 설계하고 조금씩 조절하면 손쉽게 유기물 광촉매를 얻을 수 있다.
권 교수는 “기존에는 빛을 흡수하는 유기물 광촉매 후보군을 고분자 및 화학반응에 하나씩 직접 적용해보는 방식(Trial & Error)으로 유기물 광촉매를 개발해왔다”며 “이번에 개발한 방식은 하나의 설계원리에 따라 ‘특정한 고분자 및 화학반응’에 꼭 맞는 유기물 광촉매를 설계할 수 있어, 추후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결합해 순수하게 컴퓨터를 통한 광촉매 설계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식에 따라 개발한 유기물 광촉매는 0.5ppm만 써도 성공적으로 고분자를 합성할 수 있었다. 또 기존에 O-ATRP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웠던 단량체를 재료로 쓰는 일도 가능했다.
권 교수는 “유기물 광촉매 플랫폼은 기존 ARTP 공정처럼 금속 촉매를 제거하는 과정이 없어 비용이 저렴하고, 다양한 단분자도 활용 가능해 O-ARTP 분야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고분자 합성뿐 아니라 인공광합성, 물 분해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강력한 촉매 설계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는 바룬 씽(Varun Kumar Singh) UNIST 신소재공학부 박사이며, 김광수 UNIST 자연과학부 화학과 특훈교수(국가과학자)와 스페인 마드리드 연구소의 요하네스 기리시너(Johannes Gierschner)박사가 공동교신저자다. UNIST의 이지석(화학공학과), 박이순(신소재공학과)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출판한 촉매 분야 전문지 ‘네이처 촉매(Nature Catalysis)’ 10월 11일(목)자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