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서는 돈을 어떻게 써야할까? ‘물건보다 경험을 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연구가 나와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UNIST 경영학부의 이채호 교수팀에 의하면, 소비행복의 정답은 개인의 부(富)에 따라 달라진다. 형편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공연 관람이나 여행처럼 경험과 추억을 사는 ‘경험 소비’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낀다. 하지만 형편이 상대적으로 덜 넉넉한 사람들의 경우 경험보다는 전자기기나 옷 등 물건을 사는 ‘소유 소비’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Impact Factor: 7.37)’ 7월호에 게재됐다. ‘심리과학’은 미국심리학회(APS)에서 발행하는 심리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다. 논문은 이후 3개월 만에 알트메트릭(Altmetric) 기준 사회적으로 가장 논의가 많이 된 논문 상위 1%에 올랐다.
이채호 교수는 “지난 15년간 많은 경영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은 소유보다 경험을 소비해야 행복해진다고 조언해왔지만 이는 사회계층 간 소득 격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상위계층, 즉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자아의 발견과 향상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는 ‘경험 소비’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 반면 하위계층, 즉 소득과 교육수준이 낮아 물질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현명한 소비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실용적이고 오래 지속되어 경제적인 ‘소유 소비’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
이는 지난 15년간의 소비행복 선행연구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1,000 명 이상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및 실험조사로 얻은 결론이다. 연구진이 총 23개의 선행연구를 분석한 결과, 사립대 학생이 국공립대 학생보다 경험소비로 더 큰 행복감을 얻는다는 게 드러났다. 미국의 사립대는 국공립대보다 학비가 비싸고 상위 계층 출신 비율이 높으므로 ‘상위계층일수록 경험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다’는 연구진의 가설이 지지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어 응답자 개인의 사회계층을 주관적 인식, 객관적 지표, 그리고 ‘소득 변화에 대한 상상’ 등으로 다양하게 살펴 사회계층 효과를 검증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상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경험소비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꼈고 스스로를 하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소유소비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꼈다. 이 결과는 응답자의 사회계층을 소득과 교육수준 등 객관적 지표로 나눠 진행한 후속 실험에서도 비슷했다.
특히 소득 변화를 상상하게 한 마지막 실험에서도 결과가 유사했다. 월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상상한 응답자들은 ‘경험소비의 행복이 더 클 것’이라고 답했고, 반대로 월 소득 감소를 상상한 응답자들은 두 소비 간 행복감이 비슷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채호 교수는 “‘경험’이 자아 발견과 향상 등 중요한 행복 요소들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소유’ 역시 실용적, 지속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를 제공한다”며 “남들의 조언을 무분별하게 따르기보다 개인 상황에 맞는 소비를 추구하는 게 행복의 총량을 늘릴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소비자의 행복을 높이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 더 나아가 국가의 복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소비 행복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경영학을 심리학에 접목한 심층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논문명: Experiential or Material Purchases? Social Class Determines Purchase Happ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