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시설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똥’을 주제로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였다. 예술과 과학이 만나 ‘순환’의 의미를 그린 작품들은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에 신선한 자극을 전했다.
UNIST(총장 정무영)는 28일(수)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 Science Cabin)’에서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열었다. 이는 새로운 생태시스템과 순환을 위한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언스 월든에서 추진한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자리다. 예술가들은 과일집에 입주해 11월 한 달간 머무르며 사이언스 월든의 가치와 비전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진행해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원길 작가의 ‘몽유똥원도’다. 이 작품은 독특한 얼룩과 금이 어우러져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얼룩이 작가가 먹고 마신 커피와 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작가는 과일집에서 먹고 자며 배출한 것들을 태우고 갈아 자신만의 물감으로 재탄생시켰다. (관련 인터뷰: “잊혀진 것 되살리는 과학에서 영감 얻었죠” )
전원길 작가는 “똥이 버려지지 않고 순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보려 했다”며 “이번 작품은 일상 속에서 버려지고 지워지는 것들의 의미들을 쌓아올려 그 가치를 되살리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는 시도는 종종 있지만 사이언스 월든과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는 상생과 순환의 가치를 함께 고민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며 “오늘 행사가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함께 레지던시에 참가한 임승균 작가는 ‘향’을 통해서 순환의 가치를 표현했다. 그가 만든 향은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 향으로 쓰일 수 있다. 물론 이 재료 또한 지금껏 버려지던 찌꺼기다. 그는 과일집에서 분뇨를 처리하고 남은 슬러지(찌꺼기)를 향료와 함께 섞어 향을 만들었다. 임 작가는 “‘향’을 통해 지금껏 버려지고 멀리하려 했던 것들의 가치를 되살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예술가 상주 작업은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생활형 연구실인 과일집에서 과학–예술 간 협력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기획됐다. 사이언스 월든에서 진행하는 연구와 연계된 예술작업을 창출하고, 이 과정에서 과학도들과 예술가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서로 자극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11월에는 전원길, 임승균 작가가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진행했으며, 오는 1월 3명의 예술가가 새로 입주할 예정이다. 작가들은 상주기간 동안 교내 실험실을 방문하고, 매주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해 연구원 및 학생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UNIST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자체적 순환시스템 구축을 통해 인분을 분해해 에너지로 만들고, 화장실 사용자에게 화폐를 지급하는 ‘똥본위화폐’를 실현하기 위한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을 통해 환경순환을 실현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상주 작업을 주관한 백경미 기초과정부 교수는 “이번 예술가 상주 프로젝트는 새로운 생태적 연결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융합연구과정에서 시도된 과학-예술 간의 협력 사례”라며 “이번 프로젝트가 과학도와 예술가 모두에게 사이언스 월든이 제안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발전할 대안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과일집은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생활형 실험실이다. 3명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생활시설을 갖췄으며, 인분을 에너지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평소엔 연구원들이 상주하며 각종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번 작업처럼 예술과 과학이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