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3시 과일집(125동, Science Cabin)에서 사이언스 월든의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열렸다. 여기엔 지난 11월 한 달간 과일집에 상주하며 사이언스 월든의 정신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과학을 통해 새로이 살아난 ‘순환’의 의미를 과학기술과는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레지던시 프로젝트에는 전원길 작가와 임승균 작가가 참여했다. 전원길 작가는 ‘몽유똥원도’라는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버려졌던 것들의 의미를 되살리고 삶의 흔적을 기록했다. 그는 몽유똥원도에서 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순환과 생태, 삶과 가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UNIST Newscenter에서는 과일집에서 한 달을 살며 예술의 언어로 사이언스 월든의 정신을 표현한 전원길 작가를 만나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는 전원길 작가와의 일문일답.
Q1. 어떻게 과일집 예술가 상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나?
A1. 과일집이 설립된 후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중 특히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던 백경미 UNIST 기초과정부 교수와 논의하면서 예술가 상주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었다. 11월과 1월 두 차례에 걸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고, 11월에는 저와 임승균 작가가 입주하게 됐다. 1월에는 3명의 작가가 입주할 예정이다.
Q2.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는 과일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할 것 같다.
A2. 작가들이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사전에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해도를 높였다. 참여 교수님들과 연구원분들이 프로젝트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설명해줘서 작가들이 좀 더 이해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다. 실제 워크숍 후에 작가들의 제안들을 받아서 검토를 진행했고, 흥미로운 제안을 많이 접수할 수 있었다.
Q3.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A3. 작가들이 진행한 작업을 통해서 사이언스 월든이 지향하는 가치인 ‘순환’과 ‘상생’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다. 지금껏 과학, 공학의 언어로만 전했던 의미를 예술로 표현해 어떻게 더 풍부하게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공학, 과학을 통한 순환의 의미를 예술의 언어를 통해 일반에게 쉽게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똥본위화폐, 순환경제의 의미를 그저 쉽게 설명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적 감응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의 의미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 것이다.
Q4. 과학과 예술이 만난 프로젝트다.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나?
A4. 과학과 예술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연결돼있다. 둘 다 자연과 삶에 대한 관심을 근본으로 갖기 때문이다. 초점이 같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같이 할 수 있다.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가 특별한 것은 ‘순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월든은 인간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황폐화했던 것들을 과학을 통해 다시 회복하려는 의미 있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여기서 영감을 얻는다. 자연이 어떤 재료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간의 삶과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을 살려내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층이 다른 생각이 전개되는 공간에 들어오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생각의 방향도 바뀌게 되고 그 결과물도 달라진다.
UNIST에서 이뤄지는 이번 예술가 상주 프로젝트는 이런 의미에서 굉장히 특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러한 작가들의 상상력과 활동이 연구자분들께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뇌의 다른 곳을 자극해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5. 이번에 작업한 ‘몽유똥원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A5. 이 작품은 ‘어떻게 사이언스 월든의 정신을 개인의 삶속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실천으로 옮겨본 것이다. 과일집에서는 똥이 버려지지 않고 순환한다. 과일집에 구축된 스마트 변기, 바이오가스 처리 시스템은 똥을 버리지 않고 가스로, 에너지로 전환해 다시 사용한다. 지금까지 수세식 화장실 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됐던 똥의 순환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복원된 생태적 순환을 일반인이 직접 집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개인으로서, 작업실에서도 할 수 있는 순환의 시스템을 풀어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의 방식을 활용한 ‘똥틀’을 제작했다. 여기서 받은 변을 태워 만든, 퇴비화 한 ‘똥분’이 안료(물감)가 된다. 내가 마신 커피, 먹은 것으로부터 만든 똥분이 섞여서 하나의 물감처럼 천위에 물이 드는 것이다.
작품은 매일매일 먹고 마시고 생산한 것으로부터 쌓인다. 내 일상과 삶의 흐름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이다. 계속해서 색이 번지고, 쌓이고 깊어져가는 것 자체가 삶의 흔적, 존재의 흔적이 된다. 이는 예술이 가장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나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된다. 내가 먹고, 배설하고, 사는 과정 자체가 작업이 되면서 생리적인 예술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다.
이렇게 제작된 몽유똥원도는 얼룩이 만드는 미적 가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 삶에서 잊혔던 부분들을 복원한다. 먹고 배설하는 것은 수단으로 여겨진다. 성공, 돈에 대한 추구가 앞서고, 먹고 배설하는 것은 뒤에 숨겨진다. 작품은 삶의 중요한 일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삶의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의미 있게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Q5. ‘몽유똥원도’에는 금도 함께 사용됐다.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A5. 금은 우리 모두가 갖고 싶어 한다. 변하지 않는 가치, 돈을 의미한다. 똥은 누구나 불편해한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어떤 의미를 낳을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이 둘을 동시에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과 심리를 가지게 될까? “어, 똥이야?”와 “어, 금이야?”라는 두 반응. 무가치와 가치를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서 무엇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똥은 건강의 척도다. 살아있어야 똥을 누고, 잘 눠야 건강하다. 즉 똥은 생명의 존재성 자체다. 또 금의 가치는 결국 살아있어야 생기는 것이다. 어쩌면 똥은 존재성 자체를 의미하기에 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런 대비와 의미를 마주할 때 생기는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Q6. 80년대부터 자연주의 미술을 추구해왔는데, 이번 프로젝트와는 어떻게 연결되나?
A6. 자연주의 방법론을 제안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어떻게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 안으로 가져와서 인간의 의지와 나란히 할 수 있는가?’였다. 자연을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공존하는 것으로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몽유똥원도에서는 스스로 조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물이 흘러나오는 그대로가 작품이 된다. 내가 의도한 프로젝트의 일부이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그대로 만드는 모양인 것이다. 내 의도와 자연의 현상이 공존하며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지금껏 추구해온 자연주의 미술과 맞닿아 있다.
Q7. 몽유똥원도는 끝나지 않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는데?
A7. 현재 한 달에 걸쳐 작업을 진행한 상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천에 그려졌고,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다. 과일집을 벗어나서 개인 작업실에 옮겨서 계속 얼룩을 그려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려진 얼룩은 일반 물감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색이 바란다. 오래지나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물감보다 수명이 짧은만큼 없어지는 속도가 빠르고, 또 매일매일 새로운 얼룩이 생기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고 늘 변화하게 된다. 말 그대로 고정되지 않는, 끝나지 않는 그림이고 계속해서 변하는 작업이다.
Q9. 과일집에서 작품 외 다른 순환도 시도했다고?
A9. 작품의 재료인 ‘똥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은 것을 활용하기 위해 미니 온실을 만들었다. 온실 한편에는 지렁이를 키우고 있는데, 과일집에서 살며 먹고 남은 음식과 똥분을 준다. 이것을 먹고 지렁이가 만드는 퇴비를 활용해 식물을 기르고 있다. 매우 좋은 비료다. 나에게서 시작된 양분이 지렁이로, 식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환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8. 몽유똥원도 외에 다른 작품들도 진행되고 있는데, 간단히 소개한다면?
A8. 이번에 같이 진행한 임승균 작가는 과일집에서 발생되는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똥으로부터 만들어진 가스와 이를 활용해 생산된 전기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로 LED 패널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에너지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또 다른 순환을 보여준다.
사이언스 월든은 생리적 배설물과 그 순환에 주목하고 있다. 한 작가는 여기에 착안해서 몸에서 배출되는 땀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땀에서 소금을 추출해 이를 활용한 작품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일집에서는 다양한 예술적 프로젝트가 가능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연구원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구상한 것들이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도 진지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