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북극의 온도는 평년보다 무려 30도 이상 높았고, 이런 이상고온 현상이 61시간이나 지속됐다. 북극 지역의 빙하 부피는 1980년대보다 70%가량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북극에서 나타나는 기후 변화는 이 지역뿐 아니라 전 지구로 확장돼 에너지와 식수, 식량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기후학자들이 북극 지역에서 진행되는 빠른 온난화, 즉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에 주목하는 이유다.
강사라 도시환경공학부 교수와 김도연 도시환경공학과 연구원이 포함된 국제 공동 연구진이 ‘북극 증폭의 원인이 북극해 지역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11월 20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말테 스터커 연구위원이 주도했으며 미국과 호주, 중국 등 전 세계 연구진이 참여했다.
지난 100여 년간 지구는 꾸준히 뜨거워졌지만, 모든 지역의 온도가 균일하게 상승하지는 않았다. 북극해(Arctic Ocean)를 둘러싼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등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뜨거워진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르는 개념인 북극 증폭은 오래 전에 제시됐지만, 주요 원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북극 증폭의 원인을 북극 지역 내부에서 찾은 ‘지역적 메커니즘(local mechanism)’이 등장했다. 이산화탄소(CO₂) 등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열을 잡아둬 지표면의 온난화를 유발한다. 눈과 빙하가 햇빛을 반사시키던 북극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치명적이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눈과 빙하가 녹아내리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햇빛이 그대로 전달된 북극의 토양과 바다에서는 온난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극지방은 지표면과 상층부 대기의 열에너지 교환이 적어 냉각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극지방의 특성이 북극 증폭을 유발한다는 게 지역적 메커니즘으로, ‘표면 반사율의 하락’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정설로 여겨지던 이 메커니즘은 2000년대에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기후 모델이 등장하며 ‘원거리 메커니즘(remote mechanism)’이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시됐다. 원거리 메커니즘은 온실가스가 열대, 중위도 지역의 온도를 상승시키고, 멕시코 만류와 북대서양 해류가 따뜻한 해수를 북극해까지 운반하면서 북극 근처의 해빙을 녹인다는 모델이다. 기후변화는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 요인을 찾아 기후변화를 명백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이 논란을 잠재울 새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표면 반사율 감소, 대기 순환, 열대 및 중위도 지역의 온난화, 해류 변화 등 북극권 온난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인을 규명했다. 그런 다음 각 요인을 모두 적용해 1951년부터 2017년에 걸친 장기간의 기후 변화를 시뮬레이션했다. 이후 개별 요인에 대한 민감도 실험을 진행하며 현재의 기후 상황과 비교했다.
그 결과 북극 지역 내부의 요인만 적용한 경우에도 북극해 지역의 온난화가 강화된 실제 기후 상황과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북극 증폭에 있어 원거리 메커니즘은 제한적인 역할만 할뿐, 지역적 메커니즘만으로도 북극 증폭이 야기된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극지방의 빙하와 생태계가 지구 온난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극 증폭은 비단 북극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범지구적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북극 지역 바깥쪽의 지구 온난화 현상은 해양의 온도를 증가시켜 따뜻해진 열을 지구 곳곳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또 북극 지역 빙하 부피의 감소는 범지구적인 해수면 상승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연구를 주도한 말테 스터커 IBS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북극 증폭에 기여하는 지역적인 요인과 더불어 열대지역, 중위도지역 등 원거리 요인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진행됐다”며 “ 그 결과 최근 떠오른 원거리 메커니즘을 반증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북극 온난화에 대한 명백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강사라 교수는 현재 연구년으로 미국에 머물며 기후역학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부터 전 세계 기후역학 연구를 주관하는 ‘기후역학 전문위원(Climate Dynamics Panel, CDP)’으로 선임됐고, 6월에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구과학회(AOGS)에서 수여하는 ‘카미드 메달(Kamide Award)’을 받았다. 김도연 연구원은 ‘한국-캐나다 이공계 대학원생 프로그램’에 선발돼 8월부터 6개월간 캐나다 맥길대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온난화와 전지구적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