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공을 아래로 누르면 옆으로 늘어난다. 세상의 물질 대부분은 이렇게 누르는 방향과 수직인 쪽으로 ‘팽창’한다. 그런데 특별한 구조를 가진 물질에서는 반대가 된다. 누르는 방향의 수직으로 ‘수축’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 있던 ‘음성 푸아송 비(Negative Poisson’s ratio, NPR)’의 특성을 가진 메타물질(Metamaterial)에 관한 이야기다.
최원영 자연과학부 교수팀은 금속과 유기물로 이뤄진 구멍이 많은 구조체인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 MOF)’를 합성하고 음성 푸아송 비(NPR)의 특성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음성 푸아송 비를 가진 물질은 충격파 흡수재료나 센서, 인공 근육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라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 내용은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의 자매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5월 10일(금)에 게재됐다.
‘푸아송 비(Poisson’s ratio)’는 물체에 힘을 더할 때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물체에 압력을 가했을 때 그 방향과 수직인 쪽으로 팽창하므로 푸아송 비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몇몇 독특한 물질은 압력이 가해진 방향의 수직인 쪽으로 수축하는 특징을 보인다. 푸아송 비를 가진 물질과는 반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것을 ‘음성(Negative) 푸아송 비’의 특성이라 한다.
기존 음성 푸아송 비의 특징을 가진 모델은 수학적 계산으로 연구됐다. 그 이후 다양한 모델을 기반으로 제올라이트나 고분자 등에서 음성 푸아송 비의 특성을 확인했다. 이 물질들은 다양한 구조적 특징을 보였는데 이 중에는 ‘내부 구조 배열이 회전(rotation)하는 형태’도 있었다. 최원영 교수팀은 이런 ‘회전 모델’을 유연한 고체 물질에서 구현해 음성 푸아송 비를 갖는 MOF를 합성했다.
제1저자인 진은지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음성 푸아송 비의 특성은 구성성분이나 크기가 아니라 내부 구조의 배열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음성 푸아송 비의 특성을 갖는 회전 모델을 자기조립 고체 물질에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팀은 새로 합성한 MOF(UPF-1)에서 음성 푸아송 비의 특징이 나타나는 원리도 규명했다. 이 물질에는 경첩처럼 접히는 구조(Hinged Point)가 있어 이를 중심으로 내부 구조의 배열이 변한다. 그 결과 회전 메커니즘을 토대로 물질이 수축·팽창하면서 음성 푸아송 비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진은지 연구원은 “회전 모델을 가진 물질은 외부에서 자극이 주어지면 힌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내부 구조가 변하면서 빈틈없이 모이거나(수축), 힌지 포인트만 접촉한 채 모두 떨어진다(팽창)”며 “이번에 새로 합성한 UPF-1 또한 회전 모델을 기반으로 외부 자극(온도)에 따라 회전하면서 구조가 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공동연구를 진행한 민승규 자연과학부 교수팀은 UPF-1의 푸아송 비를 밀도함수이론(DFT)에 기반한 반-경험적(semi-empirical) 방법(DFTB)으로 계산했다. 그 결과 UPF-1 구조는 압력이 주어진 방향에 수직 쪽으로 변화하면서 음성 푸아송 비의 값(-1)을 갖는 걸 확인했다. 이런 변화는 접히는 지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회전 모델’에 기반하고 있었다.
참고로 MOFs는 유기분자와 금속을 스스로 조립하게 유도해 합성한다. 다양한 금속과 유기분자를 선택해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공개된 MOF 구조가 7만여개에 이른다. 최원영 교수는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보고된 7만여 개의 금속–유기 골격체 중 특정 구조가 음성 푸아송 비의 특성을 갖는 물질의 후보가 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라며 “다양한 구조에서 새로운 메타 물질의 등장을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나명수 자연과학부 교수와 장우동 연세대 교수도 참여했다. 연구 수행은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기초연구사업(한국형SGER)과 우수과학연구센터(SRC)과 글로벌박사양성사업(GPF)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