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는 타인의 눈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를 근거로 자폐 진단에 ‘눈 맞춤’을 활용하려는 연구도 종종 나왔다. 그런데 눈 맞춤은 자폐보다 개인차가 더 크며, 자폐아 진단에 적절치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자폐아는 상황별 주의 집중에 약하므로 눈 맞춤보다 맥락별 시선 분석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UNIST(총장 정무영) 기초과정부의 권미경 교수는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캐런 피어스 박사와 함께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 이하 자폐)를 보이는 영유아의 특징을 분석했다. 1~4세 사이의 영유아 616명을 대상으로 눈 운동을 관찰해 자폐를 보이는 영유아의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권미경 교수는 “기존 연구들은 주로 15명 내외의 자폐 영유아를 대상으로 연구해 신뢰도 확보가 어려웠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자폐 영유아를 포함한 616명을 분석하고, 집단별로 비교도 진행해 신뢰도 높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번 연구를 소개했다.
자폐를 겪는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0~3세 사이, 즉 뇌 발달을 비롯해 언어 및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자폐 진단을 받으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자폐 진단은 대부분 4세 이후에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학계에서는 영유아의 눈 움직임을 추적해 조기에 자폐 여부를 진단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만 1세에서 4세 미만 영유아 616명의 눈 운동을 관찰했다. 실험 대상에는 자폐 진단을 받은 영유아는 물론, 가벼운 자폐 증세를 보이는 영유아, 언어나 발달 전반에 장애가 있는 영유아, 일반적인 영유아 등이 포함됐다. 서로 다른 집단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대상을 포함시킨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까꿍’, ‘안녕’ 등과 같은 간단한 대화와 몸짓을 보이는 사람이 등장하는 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을 보게 됐다. 이때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어느 부분을 얼마나 오래 보는지 컴퓨터 프로그램과 연결된 눈 운동 추적기로 분석했다.
그 결과 자폐 영유아들이 동영상 속 인물의 눈을 응시한 총 시간은 다른 아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동영상에 자폐 아동들이 좋아한다고 알려진 기하학적 무늬를 추가하거나, 인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정지된 모습을 보여줘도 자폐 아동들이 동영상 속 인물의 눈을 응시한 총 시간은 다른 집단과 유사했다.
권미경 교수는 “이는 기존의 편견과 달리 자폐 영유아의 눈 응시 시간은 다른 영유아와 차이가 없었으며, 개인 차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자폐 영유아들은 눈동자를 응시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얼굴 전체를 덜 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폐 영유아들은 동영상 속 인물의 눈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덜 쳐다봤으며, 다른 기하학적 무늬에 시선을 돌리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자폐 영유아가 문맥에 맞게 중요한 정보로 주의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권 교수는 “타인의 감정을 볼 때 눈을 보고, 말하기를 배울 때는 입을 보며, 사람이 말할 때 옆에 다른 물체가 있어도 얼굴을 보는 게 일반적”이라며 “자폐 영유아의 경우에는 이처럼 상황이나 맥락에 맞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이어 “이번 연구에서 분석된 자폐 영유아의 시선 처리를 활용하면 자폐를 진단하는 소아과 의사나 의료진, 이들을 치료하는 발달/임상 전문가 등에게 유용한 진단 도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자폐는 조기 발견할수록 치료 효과가 커지는 만큼 이번 연구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미국 소아청소년정신의학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3월 6일일자 온라인판에 공개됐으며, 출판을 앞두고 있다. 연구지원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