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진 맹금류는 조류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맹금류는 사납고 민첩하지만, 육식만을 하기 때문에 개체수가 적고 멸종의 위협이 높은 종이기도 하다. 이런 맹금류의 보호와 보전을 위한 첫 걸음으로 이들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다.
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KOGIC, 센터장 이세민)는 국립생물자원관과 함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맹금류 4종의 표준 게놈지도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조류 게놈 비교 작업을 통해 맹금류의 진화와 야행성 조류의 특성을 규명하는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지난 2015년부터 총 20종(맹금류 16종, 비맹금류 4종)의 야생조류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며, 수리부엉이, 소쩍새, 황조롱이, 말똥가리 등 4개종의 고품질 표준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조사 결과 맹금류는 약 12억 개의 염기쌍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으며, 4종은 모두 약 1만 7,000여 개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에서는 멸종위험 분석을 위해 유전다양성 분석이 진행됐다. 대부분의 맹금류는 동일개체 내의 염기서열 변이가 많아 유전적으로 건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조사대상 중 멸종위기 야생동물 I급인 흰꼬리수리의 경우는 염기서열 변이가 적어 멸종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맹금류의 특성에 맞게 진화해온 유전자를 찾기 위한 비교연구도 진행됐다. 연구진은 수리부엉이 등 4종의 표준게놈을 포함해 전체 조류를 대표하는 15개 목 25종의 게놈을 정밀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맹금류는 다른 조류에 비해 청각 등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많았고, 시각 전달 및 에너지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이 특이하게 진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매과, 수리과, 올빼미과는 아주 오래전에 분화돼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시력과 반응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감각, 운동기관에 특화된 유전자를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맹금류 자체의 특성과 더불어 야행성인 올빼미과의 특성을 기준으로 주행성 조류와의 유전자 비교도 진행했다. 분석 결과 올빼미과는 색깔을 구별하는 유전자가 퇴화했지만, 어두운 곳에서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유전자, 냄새와 소리를 감지하는 유전자가 발달했다는 특징을 보였다.
여주홍 국립생물자원관 유용자원분석과장은 “이번 연구는 최초로 맹금류 4종의 전체 게놈 해독과 게놈 비교분석을 통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맹금류의 진화와 야행성 조류의 특성을 유전적으로 규명한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기반자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자생동물을 대상으로 게놈 해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게놈 전문 학술지인 게놈바이올로지(Genome Biology, IF: 14.028)에 8월29일자 주요 논문으로 게재됐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주관했으며, 공동연구협약을 맺은 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 ㈜클리노믹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충북대학교, 청주동물원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번 연구에 필요한 시료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등 각 지역 서식지와 보전기관에서 치료 중 안락사되거나 재활치료 중인 개체에서 확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