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울산을 찾아 미래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UNIST는 5일(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윌리엄 케일린(William G. Kaelin)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초청 행사를 개최했다.
케일린 교수는 산소량을 감지하는 세포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업적으로 피터 랫클리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암 등으로 산소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세포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규명해 암과 빈혈 등 질환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번 방문은 UNIST에 위치한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단장 명경재)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날 오후 학교를 방문한 케일린 교수는 UNIST 주요 보직자와의 면담을 진행하고, 교내에 위치한 노벨 동산에 기념식수를 했다. 이후 기자들과의 간담회 시간도 가졌다.
이어 오후 4시부터 학생 대상의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에서는 산소량의 변화에 따른 세포 내의 변화를 분자적 수준에서 규명한 연구 성과를 다뤘다. 케일린 교수는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임상의로 일하며 VHL 증후군 환자들에게 암이 발병하는 과정에서 산소공급과 암의 성장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세포의 산소 감지 과정에 대해 연구해온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케일린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연구를 하며 매일을 보내는 것이 연구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라며, “큰 상을 목표로 연구하기보다는 좋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추구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강연에는 220여명이 참석했는데, UNIST 학생들 뿐 아니라 지역 내 고교생을 비롯한 일반에게도 공개됐다.
케일린 교수는 강연 이후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소속 연구자 및 연수학생들과 함께 연구주제를 심층적으로 토론하는 소규모 세미나를 진행했고, 이와 함께 UNIST 및 IBS와의 공동 연구 방안을 논의했다.
이재성 연구부총장은 “세계적 연구자와의 만남은 젊은 연구자와 학생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며 “노벨상 수상자와 만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있는 이름 없는 다리에 도전할 큰 꿈을 갖고 성장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윌리엄 케일린 교수는 UNIST에 방문한 일곱 번째 노벨상 수상자다. 지난2011년 팀 헌트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의 방문을 시작으로, 존 거든 교수, 네기시 에이치 교수, 댄 셰흐트만 교수와 아다 요나스 교수 등 지금까지 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UNIST를 방문한 바 있다.
윌리엄 케일린 교수는 강연 시작 전 언론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UNIST Newscenter에서는 언론 간담회에서 진행된 케일린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노벨상 수상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감사하고 또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했다.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한 동료 과학자들에게 감사하다. 우리가 진행해 온 연구의 질문과 그 답이 난제를 해결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
수상 업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세포가 산소의 변화를 어떻게 감지하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분자적 과정을 밝힌 것이다. 산소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데, 산소의 농도가 변화할 때 세포가 여기에 대해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 연구는 어떤 응용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까요?
인간이 가진 질병 중에는 산소의 부적절한 이동에 따라 발생하는 것들이 많다. 빈혈, 심장마비, 뇌졸중 등이 대표적이다. 인체의 산소감지 과정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이러한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특정 암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암 세포는 빠르게 확산하며 신체의 산소 소모를 늘린다. 이를 반대로 이용하면 암 조직의 산소 공급을 늦춰 그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산소량을 감지하는 단백질의 역할을 밝혀낸 것을 토대로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암 치료제 개발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해당 단백질(HIF, Hypoxia-inducible factor)는 HIF-1, HIF-2 등으로 나눠지는데, HIF-2의 경우 치료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HIF-1의 경우엔 이와 관련한 암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이러한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최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을 보면 면역항암제 개발 등 암 치료 관련 연구가 많습니다. 의약계와의 협업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인데, 관련한 연구 계획도 갖고 계신가요?
20년 간 학계에서 의학 연구를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제약사에서 위원회에 참여하는 등 신약 개발에도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약사는 기초 연구나 초기 투자까지 관여하기가 쉽지 않다. 제약사에서 근무하며 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중요한 것은 학계의 기초 연구와 제약사의 실제 후기 개발 단계가 긴밀히 연결돼야한다는 것이다.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훌륭한 업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업적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를 해야 할까요?
큰 상을 받아 업적을 인정받기 위해 연구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상을 위해 연구를 한다면 그만두길 추천한다. 상이 목표가 되면 분명히 실패를 겪고 불행해질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연구를 즐기는 것이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 연구자가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상이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계속된다면 자연스레 영광스런 업적도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과학적 흥미를 갖고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지능이나 타고난 재능보다 꾸준한 과학적 질문과 흥미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연구자는 용기를 지녀야한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과감한 도전이 더 좋은 연구를 이끌 것이다.
교수님 또한 젊은 연구자였을 때가 있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학부시절 수학을 전공했고, 컴퓨터 공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외우는 것보다는 이처럼 개념과 아이디어를 다루는 분야를 좋아했다. 이런 기초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던 것은 의학 분야로 진학한 이후 암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큰 힘이 됐다. 난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훈련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판적, 논리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과목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암기는 추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낚시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낚시를 하는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연구도 낚시와 같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어떤 연구 분야를 선택하고 연구를 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명확한 기대와 미래가 보이는 연구 분야를 선택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구를 위해서는 어떤 분야를 연구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그에 대한 좋은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학은 예술과 닮아서 ‘안목(Scientific Taste)’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의 중요성을 평가할 때 흔히 말하는 인용지수나, 영향력 지수(IF)가 사용되지만 이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지금 주목받는 많은 연구들은 과거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연구였다.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안목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새로운 예술사조로 만들어 나가듯이 과학도 누구도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탐구해나갈 때 비로소 눈부신 새로운 영역을 창출할 수 있다.
과학이 재미있는 것은 10년 후에 어떤 연구가 주목받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연구와 질문으로 가득 차 있는 이 과정을 즐기며 연구를 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