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바이러스를 피해 각자의 공간에 격리돼 안전함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과연 그게 안전한 공간인지, 무엇도 들어올 수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죠. 작은 공간에서의 불편함, 불안함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는 한편 또 어떤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 그런 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격리가 아닐까요.”
사이언스월든 센터가 올해도 과학-예술 레지던시의 문을 열었다. 2020년 레지던시는 ‘14일간의 자가격리 – 작가의 캔버스’를 주제로 9월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3개월 간 진행된다. 이번 레지던시에는 총 4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에 나선다.
29일(화) 오후 4시부터 첫 번째 참여 작가인 백다래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과일집에서 열렸다. 백다래 작가는 지난 14일(월) 과일집에 입주해 2주동안 격리된 상태로 작품 활동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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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집에 설치된 백다래 작가의 작업. | 사진: 김경채
백다래 작가는 과일집 내부에 모기장을 설치하고, 목탄과 페인트를 사용해 작업을 진행했다. 설치된 4개의 모기장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위에서 이들을 덮는 다른 모기장을 통해 하나로 묶여있다. 이 모기장에는 목탄과 페인트가 뿌려져 있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따라 그 색이 계속해서 변화한다.
백 작가는 “지난여름 장생포에서 레지던시를 진행할 때 모기를 피해 작은 방에 가득 차는 모기장을 설치하고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편안함과 다양한 감정들이 자가 격리 시대를 살고 있는 내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며 “어쩌면 작은 벌레를 피하기 위한 내 노력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모기장 속 격리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과일집 안에서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작가의 작업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고 있는 사회의 면면이 녹아들어 있다. 백 작가는 모기장에 페인트와 목탄을 뿌리면서 이런 재료들이 전혀 묻어나지 않고 허무하게 통과하는 장면들에서 격리 상황의 허무함을 느끼는 동시에, 햇볕이 비추면서 투명해지고 또 새로운 색을 발하는 모기장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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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모기장은 위에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모기장에 감싸여 있다. | 사진: 김경채
백다래 작가는 “이번 작업은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보단 현재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던 시도”라며 “모두가 처음 경험해보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시대를 새로운 시도로 엮어내는 작업들은 이 격리와 거리두기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가 안고 갈 일련의 불편함, 체념, 익숙함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작가는 사이언스월든과의 협업에 대해서는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쓸모를 만드는 것이 사이언스월든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겪고 있는 자가격리의 시대와 그 속에서 겪고 있는 변화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고 그 쓸모를 만드는 작업에 함께할 수 있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사이언스월든 과학-예술 레지던시는 영상 장치를 통해 예술가와 감상자가 만나는 ‘아티스트 캔버스’ 프로젝트와 연계돼 진행되고 있다. 사이언스월든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대중이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감상을 원하는 사람은 ‘아티스트 캔버스’ 플랫폼에서 비용을 결제하고, 온라인 영상을 통해 작가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이때 지불된 비용은 모두 작가에게 전달된다.
이는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작가들과 감상자들이 더욱 가까이 만나고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는 시도로 의미가 깊다. 이번 오픈 스튜디오 역시 ‘작가의 캔버스’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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