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진영 박사(지도교수 문회리)가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교수로 임용됐다.
김진영 박사는 UNIST 학부 1기 입학생이다. 2009년 개교와 함께 입학해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모두 UNIST에서 밟았으며 지난 2019년 2월 박사학위를 받아 졸업했다. 이후 UC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오는 3월부터 교수로서 새로운 시작을 앞뒀다.
김진영 박사는 “연구자로 성장하는데 있어 국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만큼 국내에서 더 많은 후배 과학자들이 나오도록 기여하고 싶었다”며 “연구와 교육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 박사는 학위과정 중 다공성 물질의 디자인과 합성을 통한 중수소 분리, 방향족 분자 감지, 단결정 다공성 복합재료 개발 연구를 진행해왔다. UNIST에서만 10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중 6편에서 제1저자를 맡았다. 이들 논문은 미국화학회지(JACS),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등 저명 학술지에 발표됐고, 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수한 연구를 수월하게 발표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진영 박사는 대학원 과정 5년차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논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김 박사는 “열심히 실험하고 연구했지만 실적을 내지 못해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었다”며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응원해주셨던 지도교수님이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었던 데는 UNIST 1기로서의 경험도 큰 역할을 했다. 선배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마주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해결하는데 익숙했던 것은 교수직에 도전하는 과정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김진영 박사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여러 대학에 지원했지만, 역시 처음에는 실패의 쓴 맛을 봤다”며 “하지만 떨어진 이유를 복기하고, 스스로를 보완해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었고 결국 값진 성과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진영 박사는 앞으로 학생들과 가까이 호흡하며 고민을 나누고, 길을 함께 열어갈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김 박사는 “항상 학생을 존중하고, 든든하게 응원해주시는 것은 물론 훌륭한 여성과학자로서 롤 모델이 되어주시는 지도교수님 같은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고, 좋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아래는 김진영 동문과의 일문일답>
Q1. 최근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소감을 전한다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처음 임용됐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생각지도 못한 결과라 놀랐다. 한 시간쯤 뒤에 학과장께서 축하 메일을 보내 주셔서 그때서야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면 메일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박사라는 호칭도 아직 어색한데, 교수라는 호칭을 듣게 돼 얼떨떨하다.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자가 격리를 마치고 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 기뻐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Q2. 2019년 2월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2년 만의 임용이다. 빠른 임용의 비결은?
UNIST의 슬로건이 “First In Change”다. 뭐든지 먼저 도전하고 부딪쳐보는 것이 학교의 정신이다. 마찬가지로, 교수 임용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하며 성장했던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 같다.
UNIST 1기로서의 경험이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1기라는 것은 선배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연구해야하는지, 어떤 진로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선배에게 물어볼 수 없다보니 궁금한 것은 직접 찾아보고, 찾을 수 없다면 스스로 해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감사하게도 교수님들께서 그 빈자리를 많이 채워주시기도 했다.
처음 개교한 학교에 입학해 공부했던 것, 연구실 셋업부터 실험 구상까지 UNIST에서의 시간들은 모두 처음 만나는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는 경험이 쌓이다보니 어떤 분야든지 새로 시작하고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교수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직접 부딪치며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곳에 지원했고, 처음에는 부끄러운 시간을 많이 겪었다. 면접이나 발표에서 거듭 미끄러졌지만,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고, 면접에서의 실수나 잘못들을 복기하며 스스로를 보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마지막 면접을 본 곳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Q3. 화학교육과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학위를 받기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UNIST에서 학비 걱정 없이 공부했고, ‘글로벌박사양성사업(GPF)’을 통해 장학금을 받으며 연구를 했다. 이렇게 나라와 학교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를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이 생각은 더 또렷해졌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계에서 연구와 교육을 통해 후배 과학자들이 더 많이 등장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화학과, 응용화학과, 화학교육과 등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화학교육과 교수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돌아보면 화학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화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진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화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화학교육과는 단순히 선생님을 길러내는 곳만은 아니다. 교육에 중점을 두긴 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연구실을 꾸리고 지금까지 집중해 온 연구를 펼쳐나갈 계획이다.
Q4. 지금까지 진행해 온 연구와,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한다면?
무기화학을 전공했고, 그중에서도 금속 클러스터와 유기 리간드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기공 구조를 가진 다공성 물질인 ‘금속-유기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 MOF)’를 만드는 연구에 집중했다. 어떤 금속 클러스터와 유기 리간드의 조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공 구조를 디자인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수소 분리, 분자 검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매력적인 물질이다.
미국에서는 MOF와 고분자 물질을 이용하여 복합재료를 만드는 연구로 범위를 확장했다. MOF-고분자 복합재료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연구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분리막과 필름 구조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경험을 통해 기존의 다공성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공성 복합재료의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다공성 물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다공성 복합재료 연구를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Q5. 학위과정 중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석‧박사통합과정을 밟으면 졸업까지 대략 5~6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데 첫 논문이 5년차가 되던 해의 9월에 나왔다. 오랜 시간 연구에 매달리고 노력했지만 실적을 얻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이만큼 실적이 없다면 그냥 연구실을 나와야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 주신 분이 지도교수이신 문회리 교수님이다.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가면 늘 꼼꼼히 살펴주시고,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오랜 연구 기간 동안 실패만 거듭했고 또 연구 실적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나 같은 학생의 의견을 들어주시기나 할까’ 생각하며 교수님을 찾아뵙을 때에도 언제나 새로운 의견을 경청해주시고 존중해주셨기에 힘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첫 논문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만큼 단단하게 트레이닝이 됐는지 그 이후로는 다양한 주제의 프로젝트들을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해나갈 수 있었다.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크게 자랐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Q6.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지도교수님처럼 좋은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싶은데, 먼저 학생들에게 가까운 교수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교수로서 고민과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진로를 지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여성과학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다. 학교에서 연구하면서는 과학계의 여성차별에 대한 경험을 겪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며, 생각보다 여성과학자에 대한 많은 편견과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동안 학교에서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도교수님께서 훌륭한 여성 과학자로 옆에 계셨기에, 내 주변 사람들이 여성과학자에 관한 편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활발히 연구 활동하며 한 명의 여성 과학자로서 당당히 설 수 있다면, 누군가의 편견을 깨고, 또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Q7.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후배들에게 조언이나 당부의 말을 전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UNIST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과 소중함을 학교 밖에서 많이 느꼈다. 때로는 ‘그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행복하게 연구 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만큼 학교 밖에서 만난 세계는 어렵고, 불합리하기도 하고 편견과 차별도 많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이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반면 UNIST에서의 경험은 더 나은 내일, 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꿈꿀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UNIST 동문들이 좋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