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가득한 2021년 3월 사이언스월든 과학예술융합 레지던시의 주인공은 이승연 작가다. 지난 3월 11일(목) 과일집에 입주해 약 2주를 보냈다. 과일집에서의 시간을 묻는 질문에 이승연 작가는 ‘유리병’이라는 단어를 건넸다.
“제게 과일집은 유리병 같아요. 밖에서 안을 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는. 24시간 내내 작업 장면을 송출하는 아티스트 캔버스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유리병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보고 있어요.”
이승연 작가는 드로잉 작업을 기본으로 철, 나무, 패브릭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드로잉의 주제는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환상’이다. 이방인으로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관찰한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산맥, 유럽 대륙의 끝 호카 곳, 말레이시아 탄중피아이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발견한 이야기와 문화적 체험은 이승연 작가의 손에서 환상으로 탈바꿈했다.
이승연 작가는 “신기하고 기이한 환상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며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적 체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한 인식들을 상상, 가공, 변형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행이 제한되면서 이승연 작가의 작품 활동도 변화를 겪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재난의 시대, 작가는 연을 타고 국경을 넘는 상상을 작업으로 표현했다.
“전염병, 기후위기 같은 재난의 시대를 화려한 예술로 맞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드로잉을 했고, 그걸 연에 달아서 하늘 높이 날리는 시도를 계속했어요. 마스크를 쓰고 연을 날리기 위해 달리는 제 모습과, 잠깐 날아오르고 또 추락하는 연의 모습도 하나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과일집에 입주한 이승연 작가는 하늘을 나는 연에 이어, 바다를 여행하는 유리병 속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재난 속에서의 두 번째 여정인 셈이다. 두 번째라서 일까, 이승연 작가는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디지털 드로잉과 익숙했던 손작업 드로잉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승연 작가의 작업은 아티스트 캔버스(Artist Canvas)를 통해 만날 수 있다. 3월 말에는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한 달간의 생활과 작업을 소개하는 시간도 진행될 예정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문명과 역사가 기록된 카펫, 조각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다양한 문양과 패턴,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기록하고 있는 제 작품들도, 미래의 누군가에겐 21세기의 예술가가 문명을 기록한 작업으로 보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