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잘 휘어지는 ‘유기 반도체’를 실제 반도체 소자에 응용할 가능성이 열렸다. 실리콘 같은 ‘무기 반도체’에 못 미치던 성능을 보완한 새로운 ‘2차원 유기 반도체 소재’가 합성된 덕분이다.
UNIST(총장 이용훈) 에너지화학공학과 백종범 교수팀은 ‘방향족 고리화 반응’을 통해 ‘HP-FAN(에이치피-펜) 2차원 유기 고분자 구조체’를 합성했다. 이 물질은 반도체로 활용하기 적절한 ‘밴드갭(Band-gap)과 높은 점멸비(On/off), 전하이동도(Mobility)’를 가지고 있어 실제 반도체 소자로 활용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사용 중인 ‘실리콘 반도체(무기 반도체)’는 딱딱하고 무거워 ‘돌돌 말리는 디스플레이’나 ‘입는 전자기기’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 대체할 반도체 물질로 가볍고 유연하며 단단하고 전기가 잘 통하는 ‘그래핀’이 주목받았으나 역시 문제가 있었다. 그래핀의 밴드갭이 너무 작아 점멸비가 낮고 결국은 반도체 내에서 전류 흐름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핀의 한계를 뛰어넘을 대안으로 ‘유기 반도체’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유기 반도체는 그래핀처럼 유연하고 가벼울 뿐 아니라 공정비용이 낮고 물성 조절이 쉬워서다. 그러나 유기 반도체는 소재 내부에서 전자(electron)나 정공(hole)이 느리게 움직여 반도체 소자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전하이동도가 낮은 소재로 반도체 소자를 만들면 전기적 신호 전달이 더뎌지고 디스플레이 등에서 색상 변환 지연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백종범 교수팀은 유기 반도체의 전하이동도를 높일 새로운 구조체를 고안했다. 두 종류의 화학물질(HAB와 DHBQ)을 반응시켜 HP-FAN 구조체를 얻은 것. 이 구조체는 2차원 방향족 구조에 균일한 기공과 질소(N) 원자가 첨가돼 적절한 밴드갭과 높은 점멸비, 전하이동도를 가진다.
제1자자인 노혁준 박사는 “안정하고 결정성 높은 2차원 구조체를 개발하고, 이 물질의 반도체 특성을 실험과 계산으로 모두 확인했다”며 “실제 반도체 소자로 응용할 때도 훌륭한 성능을 보여 앞으로 물질 개발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연구책임자인 백종범 교수는 “2차원 고분자를 유기 반도체 재료로 사용했을 때의 고질적 문제인 ‘낮은 전하이동도’와 그래핀 반도체의 치명적 한계점인 ‘낮은 점멸비’를 모두 극복했다”며 “앞으로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뛰어넘는 유기 반도체 소자 물질 개발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POSTECH 화학공학과 조길원 교수팀과 함께 진행했으며, 논문은 저명 국제학술지인 셀(Cell)의 자매지인 켐(Chem) 8월 30일자로 공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우수과학연구센터(SRC), U-K Brand 육성사업(UNIST)의 지원으로 연구가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