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매끈한 표면도 원자 수준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금(Au)도 마찬가지인데, 나노 수준으로 들여다보면 V자가 반복되는 헤링본(herringbone) 무늬가 드러난다. 최근 그 이유가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펑 딩(Feng Ding) 신소재공학과 특훈교수(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그룹리더)는 ‘원자 수준의 금 표면에 헤링본 질감이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현지 시각으로 10월 5일(수)에 공개됐다.
우리에게 귀금속으로 익숙한 금은 과학 분야에서도 쓰임새가 많은 재료다. 분자의 자기조립(self-assembly)을 유도하는 밑판이나 2차원 물질을 기르는 지지체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탄소 나노 리본의 합성을 위한 촉매로도 금이 사용된다. 따라서 원자 수준에서 금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은 다양한 기술 개발의 바탕이 된다.
금을 포함한 금속은 합성조건에 따라 다양한 표면 구조를 가지며, 이는 금속 이름 뒤에 기록된 숫자로 구분된다. 금의 경우는 ‘금(111)’의 표면 구조가 가장 안정적인데, 반세기 전에 이 물질의 원자 표면이 독특하다는 게 밝혀졌다. 육안으로 보면 매끈한 표면인데 나노 수준에서 관찰하면 헤링본 질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무늬가 왜 나타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펑 딩 교수팀은 금(111) 표면의 질감이 독특한 이유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 중 하나인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활용해 풀었다. 계산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금(111) 표면 구조와 물질 내부와의 관계를 풀어내는 데에 신기술의 힘을 빌린 것이다.
펑 딩 교수는 “전통적 접근으로는 10만 개 이상의 원자가 포함된 나노 구조의 움직임을 계산하기 어렵다”며 “원자 단위의 움직임을 매우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인공 신경망 기술 덕분에 금(111)이 가지는 특별한 구조의 원리를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금(111) 표면의 최상층의 원자 수는 바로 아래층보다 4% 정도 더 많다. 이 때문에 최상층의 몇몇 원자들은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다. 최상층 원자가 이 위치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으려면 위로 조금 이동해야 하는데, 이때 금 표면에 변형이 생긴다. 이 결과 금(111) 표면에 헤링본 무늬가 형성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공 신경망을 통해 금(111) 원자들에 주어지는 힘들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최상층 아래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형이 일어난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이런 변형을 금(111) 원자층이 두꺼울수록 심했다. 금(111)의 두께가 얇으면 내부 변형이 억제돼 헤링본 대신 줄무늬가 나타났다.
펑 딩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소재 연구에 머신러닝 기법을 적용해 각종 재료의 복잡한 표면 구조와 발생 원리를 알아내는 좋은 사례”라며 “앞으로 물질 표면 연구에 인공 신경망 등을 도입하는 길을 열었다”고 의미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