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순서는 평가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준다. 앞선 지원자에 대한 평가가 다음 지원자의 평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칫 공정하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뇌가 합리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이오메디컬공학과의 권오상 교수와 문종민 연구원은 ‘순서대로 제시되는 시각 대상을 평가할 때, 직전 평가가 현재 대상에 대한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했다. 그 결과 현재 평가는 바로 전 평가와 ‘비슷한 방향’, 그리고 바로 전 대상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런 상반된 인지편향을 만들어내는 계산과정을 설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다.
쇼핑이나 만남 등 일상에서 각종 평가는 순서대로 이뤄진다. 사람들은 먼저 것을 기준 삼아 눈앞의 것을 평가하며, 상반된 방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우수한 면접자나 상품을 본 다음에는 상대적으로 더 나쁘게 보일 때도 있고, 긍정적인 인식이 이어져 더 좋게 보이기도 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인지편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권오상 교수는 “우리가 경험하는 거의 모든 대상은 시간적 연속성을 가진다”며 “상태는 천천히 변하므로 직전과 현재가 비슷하다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이고, 대상의 변화를 감지하려면 차이점을 극대화하는 게 효과적이므로 뇌 인지는 두 방향을 모두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오늘 폭염주의보가 있었다면 아무도 내일 갑자기 폭설이 올 것이라고 예상치 않는다. 환경은 천천히 변하므로 직전 상태와 현재와 비슷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사례다. 반면, 어제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웠다면 오늘 온도가 높더라도 상대적으로 어제보다는 선선한 편이라고 느낀다. 변화를 감지하는 데는 차이점을 극대화한 것이 효과적인 사례다. 이번 연구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편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실험적으로 밝혔다.
실험 참가자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점들을 보고, 그 방향을 보고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여러 번 진행된 과제에서 참여자들은 직전에 수행한 결과에 영향을 받아 편향된 응답을 내놓았다. ‘직전 시행에서 점들이 움직인 방향(실제 객관적 자극)’과 멀어지는 쪽이자, ‘직전에 응답한 방향(주관적 판단)’과는 비슷한 쪽이었다.
연구진은 이런 인지편향은 뇌의 인지 처리가 대상의 상태를 ‘표상’하고, 이 표상을 ‘해석’하는 두 과정으로 나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상은 대상의 정보를 뇌로 입력하는(encoding) 과정이고, 해석은 입력된 정보를 풀어내는(decoding) 과정이다. 인지 과정에서 표상과 해석은 분리돼 있으며, 각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인지편향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만든 수학적 모델에 따르면, 뇌가 대상의 상태를 표상할 때에는 직전 상태에서 변화를 잘 감지할 수 있도록 제한된 정보처리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한다. 다음으로 표상을 해석할 때에는, 바로 전에 대상을 통해 얻은, 현재 상태의 예상치를 방금 얻은 표상과 통합해 수학적으로 최적화된 추론을 내린다.
권오상 교수는 “바로 전 대상에 따라 현재 대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일견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수학적으로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내린 결과”라며 “이번 연구는 우리의 편향된 평가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합리성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지편향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양극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뇌 인지 처리에서 나타나는 순서효과를 규명한 이번 연구가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단초를 제시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SSK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결과는 생명과학 분야의 주요 학술지인 ‘비엠씨 바이올로지(BMC Biology)’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