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으로 다양한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인공광합성’에 전복 껍데기 구조가 적용됐다. 무지갯빛을 띠는 진주층(nacre) 구조를 본따 소자를 만들자 효율이 대폭 향상됐다.
류정기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과 김병수 연세대 교수팀은 산화 그래핀과 분자 촉매를 정교하게 조립해 인공 진주층을 만들고, 이를 인공광합성용 광전극에 적용해 효율을 2.5배 이상 높였다. 이 연구는 1월 22일자 ACS Nano 표지 논문으로 출판됐다.
인공광합성은 식물이 햇빛을 받아 물과 이산화탄소를 영양분으로 만드는 광합성을 모방한 기술이다. 반도체 광전극이 햇빛을 흡수해 전자와 정공을 생성하고, 이들을 이용한 전기화학적 산화환원반응을 통해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게 목적이다. 이 과정에는 화학반응을 잘 일으킬 수 있는 촉매가 반드시 필요한데, 기존 촉매들은 비용과 효율 면에서 제약 때문에 실용화가 어려웠다.
류정기 교수팀은 인공광합성에 필요한 다양한 반응 중 물 분해 산화반응에 주목했다. 햇빛을 받아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이 반응에서는 수소 이온(H⁺)과 전자가 생성되기 때문에 어떤 화학물질을 만들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촉매로 이리듐(Ir)과 루테늄(Ru) 같은 귀금속이나 코발트(Co), 철(Fe), 니켈(Ni) 등의 전이금속 기반 화합물이 쓰였다. 이들 촉매는 광전극 표면에 잘 고정되지만 비싸거나 반응 효율이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류 교수팀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분자 형태의 촉매를 개발하고 있다. 분자 촉매는 분자 내 포함된 대부분의 금속 원자가 촉매 활성을 가진다. 따라서 표면에 노출된 금속 원자만 촉매 활성을 띠는 기존 촉매보다 우수한 효율을 보인다. 단점은 광전극 표면에 효율적으로 붙이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를 전복 껍데기 구조로 해결했다.
전복 껍데기에서 발견되는 진주층은 탄산칼슘과 유기물이 번갈아 쌓여있는 구조다. 판대기 모양으로 생긴 탄산칼슘 사이에 키틴(chitin) 같은 유기물이 들어가 탄산칼슘의 미세결정들을 접착,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때 유기물 층은 진주층이 쉽게 부서지지 않고 탄성을 가지게끔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연구진은 분자 촉매를 접착, 고정시켜줄 물질로 산화 그래핀을 선택했다. 분자 촉매와 산화 그래핀을 번갈아 쌓으면서 광전극 표면에 인공 진주층을 만든 것이다.
인공 진주층 형성에는 정전기적 인력이 쓰였다. 양전하를 띠는 산화 그래핀 용액과 음전하를 띠는 분자 촉매 용액에 광전극을 번갈아 담갔다 빼면서 서로 끌어당기도록 한 것. 이렇게 조립된 진주층 모방 광전극은 이전보다 2.5배 이상 향상된 광전기화학적 물분해 효율을 보였다. 산화 그래핀이 접착제 역할뿐 아니라 전하나 정공을 촉매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해 반응 효율을 높인 덕분이다.
류정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자연에서 배운 지혜로 효율이 높은 인공광합성 소자를 쉽고 간편하게 설계하고 개발한 사례”라며 “향후 고부가가치 에너지 자원을 선택적으로 생산할 것으로 기대되며, 전극 외 다양한 소재에도 관련 기술이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는 전다솜 에너지공학과 박사과정 연구원과 2018년 UNIST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최영규 LG화학 재료사업부 연구원이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신진연구)와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