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제 연구실 창가로 보이는 산과 푸르른 산 자락에 누운 구름들, 그리고 한창 공사 중인 새 건물들을 바라보자니…… 마음 한 곳이 아리면서 문득 도 교수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바쁜 핑계 대지 말고 밥이라도 더 자주 같이 먹을 걸, 더 따뜻하게 안아줄걸 하는 아쉬움에 목이 메입니다.
저와 도교수의 인연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것도 그렇지만, 소수정예를 꿈꾸는 작은 대학인 포항공대에서 10% 밖에 안 되는 여학생이 지내는 기숙사 생활을 함께한 선후배였지요.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2008년 어느 날, 우리 대학 건물이 하나도 완성되기 전에 임시로 사용하던 남외동 사무실에서 있었던 채용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똑 부러지는 어투와 완벽에 가까운 영어로 해 주신 자신감 가득한 발표와 야심 찬 연구 계획, 그 멋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그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감은 이후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 6여년간 한결같았고, 많은 남은 이들에게 참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도 교수는 포스텍 91학번으로 생명과학부 학사(’95) 후,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 석사 (’97)를 마치고,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Virginia Tech. 으로 유학을 떠나, 면역학으로 박사(’03)를 받았습니다. 이후 수지상세포 연구에 관한 공로로 2011년 노벨상을 받은Rockefeller 대학 Ralph M. Steinman 박사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2009년 UNIST 나노생명화학공학부 생명과학 트랙에 조교수로 부임하여 생명과학부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DC-based Immune System & Immunotherapy (DISNI) 연구실에서 면역학 관련 활발한 연구를 하던 중 2015년 3월 28일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렇긴 하지만, 개교 초기에 우리들은 참으로 바빴습니다. 개인의 연구실을 새로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인데, 우리는 좋은 대학을 만들어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많은 것을 함께 계획하고 꿈꾸었지요. 첫 학생들의 일반생물학 강의를 마친 후, 자정을 넘은 시간까지 함께 시험지를 채점하고 무엇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 의논하던 밤도 생각이 납니다. 연구재단에 첫 프로포절을 제출해 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바래 주던 그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함께 합니다. 개교초기 몇 안 되는 교수가 강의와 연구 이외에도 각종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던 시절, 너무나 멋진 영어로 프로보다도 더 완벽한 행사 진행을 해 주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영재 교육 관련 업무나, 지역 내 고등학생들 탐방이나 연구 프로그램 등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이나 지역사회를 돕는 일에도 항상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던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과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성정 때문에 투병 중에도 무리를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또 안타깝습니다.
지난 5월 30일은 우리 도 교수님 가신 후 첫 생신이었습니다. 미국 출장 중이던 동료 교수님께서 그날을 기억하시고, 오월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그저 잊기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라고 가슴 먹먹한 메일을 주셨는데,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맙고 또 당신이 그리워 혼잣말을 한참 했습니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곳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알 것이라고 믿어 보았습니다. 한참 힘겨운 항암치료로 고생하실 때, 환하게 웃으면서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산속에 가서 좀 쉬라고 말하지만, 저는 우리학교 제 방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구하는 것이 좋아요. 여기가 공기 좋은 산속인데, 더 어딜 가란 말인가요? 저는 연구하는 것이 좋고, 또 주변에 너무 좋은 동료 교수님들과 이야기 나누고, 점심 같이 먹고, 가위바위보 해서 커피 내기하고 이런 소소한 일상이 너무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우리 학교에서 어려운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또 소중한 꿈을 함께 꾸던 우리들이기에, 매일 매일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우리들이기에, 당신은 우리들 마음에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엔 참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첫 제자와 함께 심혈을 기울인 수지상세포 관련 연구가 삼성 휴먼테크 논문대상 Bio Engineering & Life Science 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한 데에 이어, 세계적으로 저명한 셀 (Cell) 자매지인 셀 리포트 (Cell Reports) 최신호에 실렸지요. 이 연구는 특정 CD8α− 수지상세포가 항원 특이적인 체액성 면역반응을 효과적으로 유도 증진하는 것을 밝힘으로써, 우리나라의 백신 및 항체관련 질병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힘든 투병 과정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이루어낸 성과임을 알기에 더욱 감사하고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당신을 보내고 제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참 의연하고 멋진 학생들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년 떠나기 며칠 전이던가요? 연구실에서 함께 차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 학생들이 스승의 날 도윤경 교수에게 선물한 쿵푸팬더 액자]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선물했다는 쿵푸팬더 액자 속의 타이그리스 도 교수님과, 맨티스 창식, 팬더 재아, 몽키 봉서 등을 보면서 참 멋진 무적의 팀이라고 했더니, 학생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면서 참 고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날 나눈 그 대화가 마지막이 될지, 그날 본 그 예쁜 얼굴의 멋진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줄이야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백일…당신과 함께 하던 연구를 아직 마무리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당신이 남긴 제자들을 잘 키우겠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당신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우리학교를 더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는 다짐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을 그리워하는 오늘 아직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면 저는 아직 당신을 놓지 못한 듯 합니다. 사랑합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