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세고, 빨리 충전되며, 오래 가는 이차전지를 만들 분리막이 등장했다. 큰 구멍과 작은 구멍이 빼곡한 ‘이중 벌집 나노막’이다. 이 물질을 리튬이온배터리의 분리막으로 활용하면 기존보다 출력은 2.5배, 충전 속도는 3배, 수명은 4배 이상씩 높아진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박수진・이상영 교수팀은 다양한 크기의 구멍이 수없이 뚫린 나노막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같은 성질끼리 스스로 뭉치는 ‘블록공중합체’라는 고분자 재료를 기반으로 만든 이 물질은 막(Membrane) 분야에서 중요한 발명으로 주목받았다.
이 물질은 특히 리튬이온배터리의 분리막으로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분리막은 리튬이온이 지나는 통로다. 구멍이 많고 균일할수록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이 좋아진다. 연구진이 개발한 나노막은 전체의 70%에 규칙적인 구멍이 뚫려 있다. 그 덕분에 리튬이온이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출력이 높고 충전도 빠르며 수명도 길어진다.
박수진 교수는 “블록공중합체라는 고분자 재료에 표면 특성을 바꿀 수 있는 화합물인 ‘표면에너지 개질제’를 도입해 새로운 나노막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이 방법으로 만든 나노막에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큰 구멍과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이 균일하게 분포되고, 개질제 양에 따라 구멍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표면에너지 개질제로 유기계 실리콘화합물을 활용했다. 만들어진 나노막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구멍 표면을 실리콘화합물이 둘러싸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표면에너지 개질제로 어떤 물질을 쓰느냐에 따라 나노막 표면의 특성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제1저자로 논문에 참여한 김정환 UNIST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나노막의 기공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 표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실리콘화합물 코팅 층은 리튬이차전지가 고온에서 작동할 때 나오는 불순물을 흡착할 수 있다”며 “이 덕분에 고온에서도 전지 성능이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뿐 아니라 다양한 막 과학(Membrane Science)에 활용될 수 있다. 막은 수처리 분야의 ‘정수(Water Purification)’, 생명분야의 ‘바이오 센서’, 화학공학의 ‘분리 공정’ 등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다.
또 다른 제1저자인 유승민 울산과학대 교수(UNIST 박사 출신)는 “새로 개발한 나노막은 크고 작은 구멍이 함께 있어 정수 분야에서도 효율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구멍 크기 제어는 물론 목적에 최적화된 다공성 막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므로 모든 막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영 교수는 “이번 성과는 블록공중합체 기반의 이중 다공성 막을 에너지 저장장치의 분야에 활용한 최초의 사례”라며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다공성 막 제조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막 과학 분야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IT/R&D 사업’과 미래창조과학부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서 지원받아 진행됐다. 연구 성과는 현지 시간으로 7월 24일자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사이언스 어드밴스는 미국과학협회의 세계적인 권위지인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