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이 유전체를 이루는 DNA의 법칙을 새로 찾아냈다. 유전학과 진화론 뒤에 물리 원칙이 깔려있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가설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생명과학부의 김하진 교수는 이중나선 DNA가 단백질 없이도 직접 다른 이중나선 DNA 서열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3월 22일자에 게재했다.
이중나선 DNA는 다시 꼬이고 엉켜서 염색체를 이룬다. 이 염색체는 교과서에 나오는 막대기 모양으로 항상 접혀있지 않고,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을 적당히 풀린 실타래와 같은 상태로 보낸다. 생물학의 관점에서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현상 대부분에 특정 단백질이 기능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물리학 기반으로 생명현상을 바라보는 생물물리학자들의 접근은 달랐다.
김하진 교수는 “DNA끼리는 원래 강한 음전하를 지녀 서로 밀쳐내는데, 특별한 양이온이 들어가면 마치 원자핵이 전자를 공유하여 결합하듯 서로를 끌어당긴다”며 “이 연구는 DNA의 염기서열과 화학적 변형에 따라 밀고 당김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DNA와 주변을 이루는 원자 하나하나를 다루는 시뮬레이션과 DNA 분자 한 쌍을 나노스케일의 공간에 가두어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DNA 사이의 잡아당기는 힘은 메틸기(methyl group)의 분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유기화학의 기본적인 단위이며 후성유전학의 가장 주요한 인자인 메틸기가 DNA의 응축을 조절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는 DNA에 대해서 오랫동안 알아왔지만 이들이 세포핵 내에서 나타내는 현상에 대해서는 최근에야 서서히 밝혀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DNA 사이의 직접적인 정전기력이 2 m에 달하는 염색체를 꼬아서 세포핵 내에 배치하고 그 뭉침과 풀림을 통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DNA를 이해하는 오랜 이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고 의미를 짚었다.
이번 연구의 저자 4명이 모두 물리학자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공동 제1저자인 김하진 교수는 박사 과정까지 원자 단위의 현상을 연구하는 고체물리 분야에 집중하다 박사 후 연구원부터 생물물리학 분야로 전향했다.
김 교수는 “생물물리학은 살아 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분자와 세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명현상의 원리를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모델을 만들고 일반화를 추구하는 물리학자로서의 습성이 생물학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물리학의 접근법이 특수성과 디테일에 더 관심을 두는 생물학자들의 접근과 상반되기에 서로 보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생물물리학 분야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세포 속 미스터리를 풀어 노화 억제, 질병 치료 등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